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임기가 남은 산하 공공기관장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했다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과기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전직 공공기관장 A 씨는 30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2017년 말 과기정통부의 압박으로 임기 중 사표를 냈다”며 “사임 무효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 “강압적 사퇴 요구 받아”
A 씨는 “2017년 말 과기정통부 B 차관으로부터 강압적 사퇴 요구를 받았다”며 “조만간 당시 사표 제출이 부당한 압박에 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행정소송을 과기정통부를 상대로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과기정통부가 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말부터 2018년까지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 등 산하기관장 7명에게 사퇴를 강요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2019년 3월 서울동부지검에 과기정통부를 고발했다. A 씨는 해당 기관장 중 한 명으로 사임 당시 임기가 2년가량 남아 있었다.
하 원장 등이 사임 직후 언론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수사 등 후속 조치가 진행되지 않아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하지만 최근 동부지검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산하 공공기관을 수사하면서 다시 증언이 이어지고 있는 것.
한 과기정통부 산하기관장은 2017년 말 과기정통부 C 본부장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사임) 날짜를 달라”는 말을 들었다. “명분이 없지 않느냐”며 거부하자 약 한 달 뒤 B 차관이 부르더니 “촛불정권이 들어섰으니 나가 달라”라고 했다고 한다.
○ “무작정 나가라고 해 놓고…”
한편 동부지검이 하재주 전 원장의 사표 강요 의혹을 불기소 처분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2017년 3월 취임한 하 전 원장은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8년 11월 물러났다.
검찰은 2020년 1월 30일 “(과기정통부가) 해당 기관(원자력연구원)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진사퇴를 권고한 것으로 볼 수도 있어 직권남용으로 보기 어렵고, 증거도 부족하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언급한 ‘문제점’은 2016년 불거진 원자력연구원의 ‘폐기물 관리 허점’ 문제로 추정된다.
그러나 하 전 원장은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취임 전 생긴 문제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과기정통부 관계자들은 나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무작정 나가라’고 해놓고 검찰에선 내게 문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동부지검은 하 전 원장을 제외한 다른 과기정통부 산하기관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산업부처럼 강제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사장 허수아비 만들어”
‘산업부 블랙리스트’ 대상으로 언급된 공공기관 8곳 외에 다른 산업부 산하기관에서 ‘중도 사퇴 압박’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산업부 산하 공기업 사장 D 씨는 30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2017년 말 산업부 E 국장이 ‘요즘 분위기를 아느냐. (사표를) 내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며 “사장이 뜻대로 인사(발령)를 낼 수 없게 허수아비로 만들어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D 씨는 당시 임기가 약 2년 더 남아 있었다.
산업부 및 과기정통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고발한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3년 동안 묵살됐던 고발 사건 중 일부가 이제야 겨우 강제수사를 시작했다”며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남은 사건도 조속히 수사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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