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개월째 3%대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서민 경제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주요 아이스크림 제조사 5곳에 대해 4년간 가격과 영업 방식 등을 담합한 혐의로 1350억 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공정위를 앞세워 가격담합 적발 의지를 강조하고 있어 물가 억제 압박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17일 공정위는 롯데지주, 롯데제과, 롯데푸드, 빙그레, 해태 등 아이스크림 제조회사 5곳에 아이스크림 판매·납품가격 및 소매점 거래처 분할 등을 담합한 행위로 과징금 1350억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회사별 과징금은 빙그레 388억3800만 원, 해태 244억8800만 원, 롯데제과 244억6500만 원, 롯데푸드 237억4400만 원, 롯데지주 235억1000만 원이다. 빙그레와 롯데푸드 등 2곳은 검찰에 고발됐다.
공정위 조사 결과 롯데제과, 롯데푸드, 빙그레, 해태제과 등 제조사 4곳은 2016년 2월 15일 영업 전반에 대해 서로 협력하자는 기본 합의 뒤 경쟁사 간 소매점 침탈 금지, 소매점·대리점 지원율 상한 제한, 편의점·기업형 슈퍼마켓(SSM)·대형마트 등 유통업체 대상 납품가격·판매가격 인상 합의 등 담합을 영업 전반으로 확대했다.
구체적인 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경쟁사간 ‘소매점 침탈 금지’를 담합했다. 원래 제조사들은 신규 소매점 또는 다른 제조사와 거래 중인 소매점들에 경쟁사보다 낮은 납품가격을 제시하며 거래처를 넓힌다. 해당 업체들은 이런 소매점 침탈을 하지 말자고 합의하며 아이스크림 납품가격 하락을 간접적으로 제한했다. 그 결과 제조사 4곳이 경쟁사의 소매점 거래처를 침탈한 개수는 2016년 719개에서 2019년 29개로 급감했다.
이들은 2017년 초 소매점에 대한 지원율 상한도 제한하기로 담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어 소매점에는 76%, 대리점에는 80%로 제한하는 식이다. 이는 아이스크림 납품 가격 하락을 직접적으로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
같은 해 8월에는 제조사 4곳이 편의점 마진율을 45% 이하로 낮추는 방식으로 납품가격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편의점에서 실시하는 할인이나 ‘2+1’ 식의 덤증정 등 판촉행사 대상 아이스크림 품목 수도 3~5개로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각 사가 판매하는 아이스크림 유형별로 판매 가격도 담합했다. 2017년 4월경 롯데푸드와 해태는 거북알 빠삐코 폴라포 탱크보이 등 튜브류 제품의 판매 가격을 800원에서 1000원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하는 식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빙그레와 롯데푸드는 공정위 조사 협조 여부, 법 위반 점수 및 법 위반 전력 등을 고려해 검찰 고발했다”라고 했다.
공정위의 이번 아이스크림 담합 사건에 대한 제재가 정부의 물가 잡기 대책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개월째 3%대를 이어가는 데다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당분간 물가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정부가 업계에 물가 억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기재부는 농림축산식품부, 공정위 등 관계 부처와 함께 식품기업들과 만나 물가 안정 협조를 구하고 있다. 기업들에 물가 관련 협조를 구하는 자리에 공정위를 대동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재부는 이달 15일에도 CJ제일제당, 농심, 오뚜기, SPC 등 대형 가공식품 회사 9곳을 만나며 공정위를 참석시켰다. 공정위가 가격 담합을 단속해 행정처분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기업들로선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해도 공정위를 의식해 가격 인상을 보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가격 인상을 하지 말라는 요구를 할 수 없다”라면서도 “기업들에 물가 안정을 위해 협조를 구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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