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7세기 조선서 유행한 지도엔 ‘소인국’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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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반할 지도/정대영 지음/192쪽·1만6000원·태학사

1621년 조위한이 쓴 소설 ‘최척전’은 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기적적으로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는 조선 외에 일본, 중국, 베트남, 만주까지 무대로 등장한다. 광해군 때 작가가 이 먼 곳들을 어떻게 상상하고 소설에 담아냈을까.

전국의 국립박물관에서 고지도와 지리지를 연구해온 저자는 1600년대 조선에서 유행한 ‘천하도’를 불러낸다. 하나의 원 안에 담아낸 세계지도다. 동아시아 일대는 제법 정확히 그렸지만 세계의 변방은 눈이 하나인 사람들이 사는 일목국, 작은 사람들이 사는 소인국 등으로 상상을 담아 그렸다. 저자는 당시 제작된 수많은 천하도를 ‘유럽의 지도가 유입되면서 지리 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확대된 결과’로 해석한다.

이 책은 고지도에 관한 스무 편의 에세이를 담았다. 막사발처럼 소박한 동람도부터 저잣거리에 만발한 복사꽃과 나룻배 안에서 대화하는 사내들을 담은 전라도 무장현 지도까지 고지도의 갖가지 매력이 가득하다.

증조부부터 4대째 지도 전문가로, 고산자 김정호에게 영향을 준 ‘동국대지도’ 제작자 정상기의 존재는 선인들의 지리 지식에 대해 한층 깊은 관점을 보여준다. 1637년 구제역이 돌자 몽골까지 가서 담배를 팔아 소 181마리를 사온 관리 성익의 이야기 등 역사와 지리가 얽힌 일화가 눈길을 끈다.

오늘날에는 스마트폰만 꺼내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어땠을까. 저자는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동판수진일용방’을 소개한다. 옷소매에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여행용 소형 지도로 스마트폰보다 작았다. 지도 외에 제사 축문 쓰는 법, 위급 시 응급 처치법, 관공서 이름과 별칭 정리 등 다양한 생활지식도 담았다. 급한 일이 있을 때 검색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스마트폰을 연상시킨다.

이 책은 우리 고서를 연상시키는 사철(실 묶음) 방식으로 제본됐다. 옛 지식인들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 좋은 환상을 선사할 뿐 아니라, 책을 펼쳐놓아 두기도 좋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지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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