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계단을 올라 대문을 열자마자 이곳에 매료됐다. 가지런한 사각 마당에는 돌확이 있었고 그 안에는 제철 꽃가지가 물에 담겨 있었다. 한쪽에는 수돗가가 있고 역시 작은 돌확이 있었는데 참외 3개를 담그면 꽉 찰 만큼 작은 사이즈였다. 그리고 하늘. 굳이 고개를 치켜들지 않아도 파란 하늘이 와락 눈에 들어오는 구조였다. 그 옆으로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훌쩍 솟아 있었다. 이곳의 사계절과 마디마디를 기록하고 있는 이종근 사진가는 “가을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도 여전히 밖의 기운과 계절 감각, 정경을 느끼는 것은 한옥의 독보적 운치다. 철문을 닫음과 동시에 따뜻한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라 마당을 주변으로 집 안에 내린 상쾌한 빛과 바람을 새삼 느끼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 잠시의 시간은 매일 차곡차곡 쌓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고, 화를 누그러뜨리며,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집 안 구조와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건축가와 협업해 근사한 선반을 만들어 좋은 것들을 하나씩 진열하고, 침실과 거실에는 벽장을 만들어 수납을 용이하게 했다. 화장실과 주방은 물론 작았지만 계절 꽃을 꽂은 화병을 올려두고 창문 너머 돌담이 보이는 것만으로 답답하지 않았다. 이럴 때 한 평 두 평 물리적 크기에 집착하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곳을 나오면서 다시금 확신했다. 한옥은 역시 ‘큰’ 집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