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동생 서훈에 큰 역할한 조카며느리, 가난-병마 속 별세

용인=유채연 기자 , 용인=이채완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입력 2021-10-26 03:00수정 2021-10-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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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정 여사, 빈소도 못차리고 안장… 임대아파트 살며 기초연금 등 의존
남편은 전두환때 강제해직뒤 病死… 시아버지 독립운동 기록 발굴 공로
“고인 남긴 安형제 필름 중요사료”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 고 박태정 여사의 유족과 안중근의사숭모회 관계자 등이 25일 고인의 영정과 운구를 들고 경기 용인시 천주교 묘지로 옮기고 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우리 엄마 어떡해…. 어떤 어머니였는데….”

25일 오전 11시경 이대서울병원 발인실. 빈소가 없어 3일장도 치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딸 안기려 씨(63)가 흐느끼며 말했다. 유족은 기려 씨와 고인의 손녀 우성화 씨(35) 2명이었다. 조문객도 취재진을 포함해 14명뿐이었다. 화환은 안중근의사기념숭모회에서 보내온 소형 화환 2개가 전부였다.

이날 경기 용인시 천주교 묘지에 안장된 고인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 박태정 여사다. 23일 향년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7월 폐렴으로 병세가 악화된 지 3개월 만이다. 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진생 씨가 1988년 먼저 세상을 뜬 후 30여 년간 가난과 병마와 싸워온 고인의 유족은 경제적 여력이 없어 빈소를 차리지 못했다.

고인은 서울대 영문과 3학년 재학 중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 의사의 아들 진생 씨와 1954년 결혼했다. 당시 고인은 영어와 프랑스어 실력이 뛰어난 재원이었다. 진생 씨는 이탈리아 제노아공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조선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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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진생 씨는 20년 가까이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1980년 외교안보연구원 본부 대사로 근무하던 중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해직된 이후 뇌경색이 발병했다. 모아놓은 가산을 대부분 치료비로 써야 했다.

진생 씨는 “아버지의 독립운동 업적으로 내가 덕을 볼 수는 없다”며 독립운동 훈장 등을 받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은 남편 병간호를 하며 시아버지의 독립운동 기록을 찾아 관계기관에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고인의 노력으로 안정근 의사는 1918년 조소앙 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한 대한독립선언서 서명 등의 공적이 인정돼 1987년 독립장을 받았다.

진생 씨가 투병 끝에 1988년 사망하자 고인 등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직업이나 소득이 없어 기초연금과 가계지원비 등을 포함한 약 100만 원이 고인과 두 딸, 손녀 성화 씨까지 네 식구의 한 달 생활비였다.

고인의 마지막 보금자리는 서울 양천구의 49m²(약 15평) 임대아파트였다. 이마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임대료를 인상한다고 하면 인상분을 구하지 못해 주변에 손을 벌려야 했다고 한다. 성화 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거나 집을 담보로 빚을 받는 방식으로 생활해 왔다”고 했다.

발인식에 온 한 인척은 “고인의 가족은 너무 가난하게 살아 안중근 의사 유족들 사이에서도 ‘아픈 손가락’이었다”고 전했다. 2017년 본보에 고인의 사연이 전해지자 독지가가 집을 기부하겠다고 나섰지만 고인은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써 달라”며 거절했다.

고인은 안중근 의사 의거일(10월 26일) 112주년을 사흘 앞두고 숨을 거뒀다. 생전 고인을 도와온 이종수 연세대 교수는 “고인이 평생 간직해온 안중근, 정근 형제가 찍은 사진 필름을 받아 특수 현상을 시도하고 있다. 두 의사의 유해도 수습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용인=이채완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안중근#동생 서훈#조카며느리#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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