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보다 많아진 죽음… ‘웰다잉’은 어떻게 준비할까[박성민의 더블케어]

박성민 기자 입력 2021-09-11 11:00수정 2021-09-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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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서비스 ‘아이백(iback)’ 만든 채백련 빅웨이브 대표
유언 작성, 상속 설계, 애도 및 심리상담 서비스 등 제공
고령화, 가족 구조 변화…스스로 죽음 준비해야 하는 시대
“미리 그려보는 삶의 마침표, 현재 삶을 더 충실하게 만들 것”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채백련 빅웨이브 대표는 “한국인의 죽음에선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가 채 전달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며 “유언을 수시로 남기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난해 한국은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서는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를 겪었다. 0.8명대까지 떨어진 출산율을 감안하면 교차했던 그래프가 다시 만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앞으로 가까운 이들의 출산보다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얼마나 돼 있을까. 국내에서 준비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이른바 ‘웰다잉(well dying)’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장례식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유언장 작성과 연명 의료를 받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누구나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는 건 아니다. 죽음을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해 준비를 미루다가 갑자기 생을 마감하거나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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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선보일 웰다잉 플랫폼 ‘아이백(iback)’도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서비스를 기획한 스타트업 빅웨이브의 채백련 대표(34)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채 대표를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채 대표는 초기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는 미국의 벤처캐피탈 ‘500스타트업’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 국회 의원실 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준비된 죽음, 상조면 충분할까
흔히 스타트업과 ‘장례, 죽음, 추모’라는 주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두고 웰다잉 플랫폼을 기획한 이유가 궁금했다.

“인구 구조와 가족 구성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으니까요. 언제까지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당연히 챙기는 시대가 계속될까요. 자식을 안 낳는 부부도 적지 않습니다. 죽음이 꼭 고령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도 아니죠. 최근 세계를 덮친 팬데믹에서 보듯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는 문제지요.”

한국인은 죽음을 준비하는 데 서툴다. 대개 상조서비스에 가입해 장례식을 준비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장례식은 죽음 후 며칠간 벌어지는 추모행사일 뿐이다. 상속과 증여 설계부터 유품 정리, 사후 추모까지 죽음이 남기는 숙제는 많다. 채 대표는 “생을 갑자기 마감하면서 장례 형태나 재산 기부 등 고인의 유지(遺旨)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양한 웰다잉 서비스를 하나로 모아 제공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종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해 유언장을 쓰는 모습. 동아일보 DB

아이백이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디지털 음성 유언장’도 있다. 국내 한 금융회사의 2015년 설문조사에서 ‘사망 전 유언장을 작성하겠다’는 응답은 54%에 달했지만 실제 유언장을 작성한 경우는 5%도 채 안 됐다. 채 대표는 “한국인들은 유언장 작성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엄청난 재산 정리가 아니더라도 유언장은 생의 마지막 메시지로서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반려 동물은 어떻게 관리하길 원하는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도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준비 안 된 죽음은 모두에게 불행”
채 대표는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150여 명을 인터뷰했다. 갓 성인이 된 젊은층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고령층까지 죽음에 대한 생각, 좋은 죽음의 의미를 물었다.

“부모 세대들은 ‘죽음마저도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30, 40대에선 ‘부모들의 삶을 반영해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하더군요.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생의 마무리를 가족과 터놓고 얘기하는 게 낯설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서로 느낀다는 의미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웰다잉에 관한 전 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40~79세) 1500명 중 64%는 좋은 죽음의 조건을 ‘미리 준비하고 주변에 피해가 없는 죽음’이라고 답했다. 채 대표는 ”코로나19 이후에 미국도 웰다잉 플랫폼에 가입하는 2040 세대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아이백의 기본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될 것이라고 한다. 상속이나 증여세 계산, 유언장 작성,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이다. 채 대표는 ”장례를 치르고 대개 3주 뒤부터 극심한 상실감이 몰려온다고 한다. 이런 유족들을 위한 애도 및 심리상담 서비스, 고인의 디지털 기록을 보관, 정리해주는 클라우딩 서비스 등을 유료로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삶의 마침표를 미리 그려보자
채 대표는 ”삶의 마침표를 미리 그려보는 것은 현재의 삶에 충실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위해선 은행 계좌처럼 내 삶을 총망라한 ‘인생 계좌’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재산뿐 아니라 인간 관계, 성취한 것과 아직 이루지 못한 꿈 등이 포함된다. 채 대표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중간 점검“이라고 했다.

채 대표는 한국인의 웰다잉에 대한 인식과 장례 문화가 빠른 속도로 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국민 1인당 소득이 오르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려는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아직 서비스도 선보이지 않은 신생 스타트업을 만난 건 숫자로 평가되는 기업의 가치보다 이 서비스가 던지는 화두가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채 대표는 ”좋은 죽음에 필요한 비용을 낮추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빅웨이브는 글로벌 벤처캐피털 500스타트업과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DHP의 투자를 받았다. 채 대표는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웰다잉 시장이 2019년 54조 원 규모로 커졌다. 한국도 인구 규모로 따졌을 때 수십 조 원의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설명회(IR)에서 만난 투자자들에게 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매출이 얼마가 되든지 모든 돈에는 꼬리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빅웨이브는 고객 한 분 한 분이 준비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성장하는 기업입니다. 그게 이 플랫폼이 갖는 의미입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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