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옥상서 끊어진 안전의식, 꿈 많은 20대 청년 앗아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9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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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가족 사진 한 장 찍자고 통화했거든요. 어렸을 때 찍고 같이 찍은 사진 없으니까. 걔가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를 떠올리던 아버지는 울먹이듯 말끝을 흐렸다. 8일 오후 1시29분경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유리창 외벽 청소를 하던 A 씨(23)가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옥상에 매달아놓은 안전 로프가 갑자기 끊어진 것이다.

아들이 생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자 가족들은 비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A 씨의 아버지는 “인공시험관을 수도 없이 시도해서 내 나이 쉰이 넘어 18년 만에 어렵게 얻은 귀한 자식이었다”며 “알바를 한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위험한 일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들은 A 씨가 일하던 현장의 안전관리가 부실했다고 주장했다. A 씨가 외벽 청소일을 한 지 이제 겨우 두 달 정도됐는데, 업체 측에서 작업 전에 안전장치 착용 확인 등의 관리를 소홀히 해 일어난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A 씨가 매달려있던 안전 로프가 끊어져 추락할 당시 현장에는 안전관리 책임자는 있었다”며 “A 씨도 안전모는 쓰고 있었지만 1차 로프가 끊어졌을 때를 대비한 2차 보조벨트를 옥상에 두고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업체 측은 “보조 벨트 착용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하는 것이지 강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대 및 구명줄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추락방지를 위해서 보조로프를 위에서 내려놓고 원래 로프가 끊기거나 매듭이 풀렸을 때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해야하는 것은 사업주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안전로프 미착용의 책임이 법적으로 사업주에 있다는 것이다.

한 외벽청소전문기업 안전 관리 책임자는 “보조장치 착용을 본인이 알아서 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일을 시키는 사업주가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며 “일을 시작하기 전 현장 관리 책임자가 1, 2차 로프와 안전모를 착용했는지 모두 확인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끊어진 안전의식은 결국 세상에서 꿈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20대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소정기자 sojee@donga.com
최미송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이정민 인턴기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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