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투머치 토커’ 정부

홍수용 산업2부장 입력 2021-09-03 03:00수정 2021-09-0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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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자 ‘집 사지 말라’ 잇단 경고
신뢰 없는데 구두개입 먹히겠나
홍수용 산업2부장
2011년 여름,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한국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이 알맹이 없는 회의와 브리핑을 하고 또 했다. ‘우리 잘못이 아니다. 한국의 펀더멘털은 탄탄하다. 과민 반응 말라’는 3단 논법이 반복됐다.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 대표였던 A는 내게 “한국 정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했다. ‘말은 적게, 꼭 해야 한다면 명확하게’가 상식인 호주중앙은행에서 잔뼈가 굵었던 A로선 말폭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관료가 말을 자주 하면 메시지가 실종된다”는 외국인의 지적이 뼈아팠다.

지금도 관료는 부동산정책에 관한 한 ‘투머치 토커’급이다. 정권 초기에는 ‘집을 팔라’, 중반에는 ‘투기와 타협하지 않겠다’, 올 초엔 ‘집값 못 잡아서 송구하다’더니 지금은 ‘가격이 고점이다’로 주제를 바꿔가며 집 사려는 심리를 누르려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6월 부동산 장관회의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고점에 근접했다”고 했다. 자산 가격의 리스크를 알리는 것은 부총리가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같은 말을 계속했다. 추격매수를 자제하라, 가격 조정 시 우려가 된다, 진중하게 결정해라…. 다른 부처 장관까지 3개월 동안 비슷한 메시지를 7번 쏟아냈다.

경고가 안 먹히는 것은 약발이 떨어져서이기도 하지만 장소에 따라 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호승 대통령정책실장은 지난달 국회 워크숍에서 “OECD 회원국 평균 집값 상승률이 7.7%인데 한국은 5.4%에 불과하다. 이를 국민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부총리는 집값이 고점이라고 했는데 정책실장은 별로 안 올랐다고 한 셈이다. 최고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고 카메라 앞에 선 관료는 많지만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없다. 법무부 차관이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브리핑하겠다며 굳이 충북 진천까지 가서 카메라 앞에 섰지만 지원방안은 사라지고 ‘우산 의전’ 논란만 남은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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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고점이라는 경고는 가벼운 게 아니다. 이 메시지를 내려고 정부는 아파트 실질가격, 주택구입부담지수, 소득 대비 가격비율을 분석했다. 부처 공무원들은 세부 메시지를 조율했고 시장에 강한 위험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자기 돈으로 집 사기 힘든데도 ‘패닉바잉’을 계속하면 빚더미를 감당 못할 것이라는 경고는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언제까지나 오르는 가격이란 없다. 지금이 과열 구간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집값은 앞선 거래가에 따라 결정되므로 금방 내려가지 않는다. 매도자가 매수자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려 주식시장처럼 변화를 체감하기도 어렵다. 매수자가 점점 줄고 원하는 가격대로 팔기 힘든 현실을 집주인들이 동시에 깨닫는 순간이 집값 그래프의 고점이 된다.

지금 정부가 부동산을 수습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해법이 뭐냐고 물으면 재건축 규제를 다 풀라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주장도 무책임하다. 지금 재건축을 허용한다고 공급이 금방 느는 게 아니다. 말도 안 먹히고 해법도 안 보이는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 국정운영백서 부동산편에 나오는 맨 마지막 문구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다. 부동산이라는 바둑판의 첫수를 공급으로 시작했다면 그런 길을 갈 수 있었다. 갈등만 키우는 세금으로 첫수를 두는 바람에 스스로 외통수에 몰렸다. 남은 수단이라곤 ‘집 제발 사지 말라’는 구두 개입밖에 없지만 그것마저 안 먹히는 지경이다.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부동산정책#투머치 토커#구두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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