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신’ 없는 청년정치인들이 왜 필요할까[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1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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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 편


지난 5월 말 김재섭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을 인터뷰 했습니다. 열흘 후면 그가 속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는데다, 한창 화두가 된 청년정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올해 34살인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 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청년최고위원 등과 함께 여의도에서 주목받는 청년 정치인중 한 명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독자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청년정치’란 과연 무엇일까요. 왜 우리 정치에 청년정치인들이 필요한 걸까요. 답을 찾기 위해 그동안 많은 청년정치인들을 만났습니다. 앞서 말한 이 대표. 이 최고위원은 물론이고 ‘박근혜 키드’로 불렸던 손수조 전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 김창인 정의당 혁신위원, 국민의힘 최연소 당협위원장인 박진호 경기 김포갑 위원장,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강명구 전 국민의힘 영등포갑 당협위원장 등 모두 정치권에서 ‘괜찮은’ 청년 정치인들로 불린 사람들입니다.

‘청년정치가 무엇이냐’는 것은 ‘왜 청년 정치가 필요 한가’와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 만약 기성 정치인들이 청와대와 당, 실세 정치인들 눈치를 보지 않고 양심에 따라 정치를 했다면, 의원 배지에 연연해하지 않고 소신껏 할 말을 해왔다면, 극렬지지층과 지역 정서가 아닌 전체 국민을 보고 정치를 했다면, 정치인들의 나이가 90, 100살이 넘어도 청년정치가 필요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년정치의 목적은 ‘좋은 정치’지, 정치인들의 평균 연령을 낮추자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기성 정치인들은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배지를 오래 달기 위해 실세와 권력에 줄을 섰고, 찍힐 까봐 입을 닫았고, 심지어는 ‘박비어천가’ ‘문비어천가’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친박·진박, 친문·비문 이런 말이 존재한다는 게 그 반증이지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하지만 의회가 제 기능을 했다면 ‘제왕 같은 대통령’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입을 닫고. 양심을 팔며 스스로 권력 앞에 기었기에 제왕적 대통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청년정치’는 아직은 때 묻지 않고, 정의와 신념이 살아있는 청년들이 이런 잘못된 정치를 바꿔줬으면 하는 국민의 기대입니다.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전문지식과 경험이 더 월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기성정치인들보다 청년정치인들에게 더 희망을 갖는 것은, 제아무리 해박한 지식과 경륜을 가졌더라도 마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그 지식과 경륜은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감방에 있는 박근혜 정부의 고위직들, 영화 ‘기생충’ 뺨치는 조국 전 법부무 장관 부부,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편다면서 뒤로는 자신들 배를 불린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아직 검증되지 않은 36살의 ‘0선 의원’이 제1야당 당 대표로 뽑힌 것은 이런 국민의 마음이 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년 정치 바람 탓인지 청년정치인들은 전에 비해 많이 늘었습니다. 청와대는 25살 여대생을 1급 청년비서관으로 임명했고, 각 대선 예비후보 캠프에는 인지도 있는 청년 정치인들을 모셔가기 바쁩니다.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평론가 중에도 청년들이 많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당 최고위원 중에도 청년이 있고, 제1야당 대표도 30대 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청년 정치인들은 곳곳에 있는데, 당연히 함께 보여야할 ‘청년정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대선 승리를 위해, 우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당을 감싸기 위해 편을 드는 젊은 정치인들만 보입니다. 일부는 자기편에 대해 쓴 소리도 합니다. 그러나 ‘젊은 애들이 그 정도는 말 할 수 있지’라고 넘어갈 수 있는 선에서 그칩니다. 그들이 과연 소속 정당과 자신이 몸담은 캠프의 후보에게 정말 약이 되는 아픈 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안하는 걸까요?


말이 길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김재섭 전 비대위원으로 다시 돌아가지요. 당시 그에게 “젊은 비대위원들이 김종인 위원장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못한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비대위원에 임명됐을 때 “정의롭지 않다고 느낀 것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민의힘은 4·7재·보궐선거를 이기기 위해 자신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결정했던 김해신공항 확장을 뒤집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여당보다도 먼저 발의해줬지요. 그는 “무리한 공약이 맞지만 선거에 영향을 줄까봐 말을 못했다. 좀 비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할 말을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는 모릅니다만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 큰 소리는 아닌 것 같군요. 대신 그가 출연하는 시사방송에서 “다만~” “단지~”란 말은 많이 듣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에 문제가 있어 지적받을 때 앞에 약간 잘못을 인정하면서 “다만 이런 점도 있습니다”라며 사실은 옹호하는 화법이죠. 제가 본 모든 청년정치인들이, 스스로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그런 화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정당과 캠프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우리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중요하겠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던, 이재명 경기지사가 되던 아무 상관없습니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캠프와 정당은 상대 후보를 이기기 위한 전투 조직이 아니라, 우리 후보를 더 나은 사람으로, 더 나은 정당으로 만드는 ‘인큐베이터’가 돼야합니다. 그러려면 필요한 게 적의에 불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애정을 가지고 우리 후보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공동체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청년입니다. 나이가 80이어도 그가 청년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정치에 대해 가장 분노해야할 청년정치인들이 친해서, 우리 당이라, 우리 후보라… 이런 이유로 상대방만 공격하고 우리 편 잘못은 눈을 감습니다.

정치권과 청년정치인들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아이디어, 이벤트의 참신성이 마치 청년정치인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캠프에 등장했던 청년유세단, 셀프디스 마케팅 등은 기성 정치인들 머리에서는 나오기 힘든 작품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so what?’이라고 묻고 싶군요. 아이디어의 참신성과 기획 성공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따라갈 사람이 없겠지요. 아이디어, 이벤트는 도구일 뿐이지 정치의 목적이 아닙니다. 탁 비서관의 이벤트는 탁월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청년정신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네 편 내편을 따지지 않고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내편은 눈 감고. 남만 공격하며 마음과 철학의 부재를 이벤트로 메우는 사람은 비록 나이가 20살이어도 꼰대입니다. 지금 청년정치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성정치권이 청년들에게 문을 더 열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젊은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청년의 탈을 쓴 기성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뒤에 올 후배 청년정치인들의 길을 스스로 막는 배신이 될 것입니다. 청년정치인들에게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기가 속한 당과 대선 후보의 승리, 정권 탈환과 연장을 위한 것 외에 국민을 위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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