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비밀노트]“식물의 고유한 특징 살리는데 세밀화만한 게 없어요”

남양주=전채은 기자 입력 2021-05-12 03:00수정 2021-05-1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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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사과꽃 세밀화를 든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그는 “요즘 같은 날씨에는 흰 꽃이 피어나 아름다운 야광나무와 이팝나무를 그려 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남양주=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씨(37)의 작업실 한쪽에는 영국, 프랑스, 일본에서 건너온 식물세밀화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다. 이 씨가 해당 국가에서 직접 구매했거나 경매에 올라왔던 희귀 서적들이 대부분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식물도감도 이 씨의 책장에 꽂혀 있다. 식물세밀화 책 사는 데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냐고 물었더니 이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책 써서 번 돈 전부 식물세밀화 책 사는 데 쓴 것 같아요.”

이 씨는 식물의 시간과 면면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내는 식물세밀화가다. 식물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다.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지만 대학생 때 우연히 들은 수목학 강의 시간에 식물 해부도를 그리다가 식물세밀화에 관심이 생겼다. 이에 식물화 그리는 사람을 수소문해 1년간 그림을 배운 후 2009년부터 3년간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 식물세밀화를 그렸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직업으로까지 이어진 것. 지금은 식물원 등 식물 관련 기관뿐 아니라 제약회사, 화장품 제조사와 같이 식물세밀화가 필요한 곳의 요청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프리랜서다. 식물세밀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식물 산책’(글항아리), ‘식물의 책’(책읽는수요일) 등 저작 활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10일 경기 남양주에 있는 이 씨의 작업실에서 식물세밀화의 매력을 물었다.

―식물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진은 어느 한 개체를 선택해서 촬영하기 때문에 해당 식물 종의 보편적인 특성을 모두 담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식물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식물세밀화가 필요하다. 식물세밀화는 여러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을 오랜 기간 관찰해서 그 식물의 고유한 특징은 살리고 외부적 요인에 의한 변이는 축소해 그린다.”

―도구는 어떤 걸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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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촉이 얇은 게 중요하다. 나무로 된 펜대에 펜촉을 끼우고 잉크를 묻혀 그리는 편이다. 요즘엔 로트링사의 제도용 펜도 0.03mm까지 생산되고 있어 그림 그리기에 좋다. 모두 5000원 이하의 저렴한 도구들이다. 채색은 수채 물감이나 수채 색연필을 사용한다. 화가에 따라 유화 물감을 쓰거나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식물을 그리는 ‘보태니컬 아트’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식물이나 꽃, 가드닝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식물 그림을 그리는 것은 식물을 가장 자세히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식물을 그렇게 오래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식물을 사랑하는 다양한 방식을 찾아내고 있는 것 같다.”

―시작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제일 좋은 건 집이나 근처 화단에 있는 식물들을 대상으로 식물 관찰 일지를 쓰는 거다.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식물이 살아온 역사를 이해하게 되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어떤 지점을 강조해야 할지 알게 된다. 식물도감을 휴대하면서 일상에서 발견한 식물들을 해당 식물이 소개된 페이지에 수집하는 것도 재밌는 방법이다.”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것만이 주는 매력이 있을 것 같다.


“각 개체의 현재 생김새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서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주변의 다양성에 눈을 뜨면서 세상을 보다 다층적으로 감각하게 됐다는 점이 제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남양주=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식물세밀화가#이소영#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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