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저하 진단해야 처방할 텐데… “교육감, 받아쓰기도 못보게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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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發 기초학력 붕괴]〈下〉 해법 못찾는 기초학력 대책

‘2분의 1 더하기 3분의 1은? 5분의 2.’

‘오늘 선생님한테 졸발리게(쪽팔리게) 혼났다.’

수도권 중학교의 김모 교장은 기초학력 미달학생 지도교사가 보여준 학생들의 수학 답안지와 일기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도무지 왜 이렇게 쓴 건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분수 덧셈은 기초학력 미달학생 40명 중에 40명이 5분의 2라고 답을 써놓은 상태였다.

“정말 오랫동안 방치되고 누적됐구나 싶더라고요. 초3 때 분수의 기초를 제대로 못 배우고, 한글에서 쌍지읒도 모른 채 쭉 올라온 거죠. 그럴 수 있어요. 초등학교는 6년간 시험을 안 보잖아요. 게다가 코로나19까지 겹쳤으니…. 운 나쁘게 6년 내내 사명감 없는 선생님을 만나면 이런 상태로 중학교에 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국내 초중고교의 기초학력 미달 문제를 교육계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교사들은 그 물밑의 근본 원인이 ‘진단의 부재’라고 꼬집었다. 교육당국이 일부 교육단체의 반발에 밀려 수년간 초중학생의 학력 확인에 손을 놓았고, 여기에 원격수업까지 더해지자 기초학력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단 없는 땜질 처방만 늘어놓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아픈 곳을 모르는데 어떻게 치료? 헛발질 대책

“이미 수년 전부터 교육부도, 교육청도 전국이나 지역단위 평가를 진행하지 않아요. 평가권한을 교사에게 넘기라며 기초학력 진단검사조차 반대한 일부 교육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모든 게 교사 자율이니 기초학력 진단도 안 해도 그만이고…. 그 결과도 예전엔 교육부나 교육청에 보고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서울 지역 초등교사)

인천의 또 다른 초등교사는 “교육감들이 나서서 선생님들에게 ‘초1은 받아쓰기나 일기쓰기 시키지 말라’고 지시하니 교사들도 ‘편하네? 안 하고 말지’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글이나 맞춤법 해득을 제때 지원할 시기만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학생들은 초1부터 중1까지 시험을 보지 않는다.

“그렇게 중2가 되고 첫 중간고사를 보고서야 기초학력이 무너져 내린 걸 절감해요. 표준화된 검사가 있어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체계적으로 보정하는데 그럴 기회 자체가 없는 것이죠.”(인천 지역 중학교 교사)

서울 지역 한 고교 교사는 “기초학력 진단을 하면 반별, 학교별, 지역별 격차가 드러나고 결국 교육부와 교육청의 숙제가 되는 셈이니 다들 하기 싫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 기초학력 책임, 기간제에 ‘외주화’ 비판

이런 상황에서 교사와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초1∼3 과밀학급에 파견한 ‘기간제 협력교사’ 제도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학습 부진 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일반 학생을 지도할 때보다 더 오랜 교감과 더 많은 지도 노하우가 필요한데도 ‘기간제 투입’이라는 면피성 대책으로 생색만 냈다는 것이다.

실제 협력교사 중에는 초등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없는 중등자격증 소지자나 교원자격증을 갖고 학습지 교사를 하던 이들도 있다. 교사들은 “때로는 이들에게 기초학력 부진 학생 지도가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기 A초 교사는 “반을 두 개로 나누면 좋으련만 과밀학교라 남는 교실이 없으니 결국 교사 두 명이 한 교실에서 어색한 동거를 하는 것”이라며 “수업은 담임 혼자 하고 협력교사는 교실 뒤에서 난처해하거나 가끔 막히는 학생을 돕는 정도”라고 토로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기초학력 미달 지도는 일반 지도보다 훨씬 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기초학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수업 중간에 짬을 내 몇 달 했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교실에서 두 명의 교사가 수업하는 것 또한 서로 훈련이 필요하다”며 “이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협력교사를 투입하다 보니 서로의 역할이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일부 협력교사는 담임교사의 수업에 대해 품평하거나 ‘나를 협력교사라고 부르는 게 불쾌하다’며 항의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수는 “결국 아이들을 이끌 사람은 담임”이라며 “과거처럼 교사들에게 별도의 수당 등 인센티브를 줘서라도 담임들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중1 담임인 이모 교사 역시 “방과 후를 활용해 개별적으로 보충지도를 해야지 수업시간 일시적인 지도로는 한계가 있다”며 “지금 제대로 보충을 못 하면 영원히 못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경기 지역 6학년 담임교사는 “방과 후나 방학을 활용해 희망자를 받으면 학교 밀집도도 엄청나게 오르진 않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이소정 기자
#학력저하#교육감#기초학력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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