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國서 年60만편 자막-더빙… 사실상 콘텐츠 재창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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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SDI미디어 인수한 번역기업 ‘아이유노’ 이현무 대표

아이유노는 글로벌로 진출한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현무 아이유노 대표는 “많은 스타트업이 해외로 
진출할 때 일 처리나 소통 방식 등 문화적 수용성 장벽을 간과한다”며 “창업자가 현지로 나가 직접 다국적 인재 풀을 만들어야 
진정한 확장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이유노 제공
아이유노는 글로벌로 진출한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현무 아이유노 대표는 “많은 스타트업이 해외로 진출할 때 일 처리나 소통 방식 등 문화적 수용성 장벽을 간과한다”며 “창업자가 현지로 나가 직접 다국적 인재 풀을 만들어야 진정한 확장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이유노 제공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콘텐츠를 다국어로 번역하는 ‘미디어 현지화(번역)’ 시장이 고속 성장하고 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3조 원 규모인 미디어 현지화 시장은 게임, 이러닝, 정부 및 기업 고객까지 포함할 경우 4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유럽 1위와 세계 1위 업체를 잇달아 인수하며 ‘공룡’으로 떠올랐다. 2019년 유럽 1위 BTI스튜디오 합병에 이어 올 1월 세계 1위 SDI미디어를 인수한 ‘아이유노’가 주인공이다. 아이유노는 현재 34개국 67개 지사에서 번역가, 성우 등 1만3000명의 스태프를 거느리고 있다. 연간 60만 시간, 매월 5만 편의 자막 및 더빙 역량을 갖췄다.

25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아이유노 이현무 대표(45)는 “미디어 번역은 말의 의미를 넘어 감동과 재미를 그대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번역 중 가장 고난도”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에선 돼지고기, 중국에선 정치 관련 내용을 편집하는 등 현지 사정을 잘 고려해야 합니다. 자막보다 더빙이 인기 있는 유럽에선 수천 명의 성우를 투입해 녹음을 하는 등 사실상 콘텐츠 재창조 수준의 작업을 하죠.”

이 대표가 이 분야 최대 기업을 키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대학생 시절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토대로 2002년 아이유노를 창업했다. 하지만 사업 시작 1년 만에 동업자가 기존 주 거래처인 DVD 업체들을 전부 빼가며 위기를 맞았다. 이 대표는 방송사로 눈을 돌렸다. 공대 출신인 그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자막 제작 소프트웨어 ‘미디어 트랜스’를 만들며 ‘번역+테크’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변신시켰다. 값비싼 아날로그 장비 대신 손쉽게 디지털 편집이 가능한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번역 계약도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순조롭던 사업은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방송사의 갑작스러운 거래 중단으로 또 한번 좌초했다. 이 대표는 “그때 망하지 않았다면 해외로 나갈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며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두렵지도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2010년 다국적 방송사 70%가 몰려 있는 아시아의 미디어 허브, 싱가포르로 방향을 틀면서 재기 발판을 마련했다. 때마침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 전용 채널이 말레이시아, 대만, 인도네시아 등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2016년엔 ‘코드커팅’(유료방송에서 OTT로 넘어가는 현상) 흐름을 포착하고 OTT 본고장인 미국에 지사를 세우고 글로벌 파트너 자리를 꿰찼다. 미국 넷플릭스, 디즈니 등이 아이유노의 고객사다.

당시 시장에는 미국 SDI미디어 등 규모가 4, 5배 큰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아이유노는 자체 개발한 클라우드 플랫폼 등 기술력과 차별화된 품질 관리를 앞세워 시장에 안착했다. 이 대표는 “방송사와 OTT마다 각각 수천 개의 표기 가이드라인이 있고 동시에 수천 명의 다국적 작가들이 30개국 이상 언어로 번역하는 상황에서 클라우드가 없었다면 균일한 품질 관리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번역 계약, 진행 상황 관리까지 가능한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도 구축했다”고 말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8년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240억 원을 투자받았다. 16년간 홀로서기 끝 첫 외부 투자였다.

이 대표는 차세대 비밀병기로 인공지능(AI)에 투자하고 있다. “키즈, 다큐 등 각 콘텐츠마다 자주 쓰는 어휘와 문맥 등을 AI가 학습하면 장르별로 훨씬 정교한 번역이 가능해집니다. 요즘엔 종이로 된 제품설명서 대신 유튜브를 보고 정보를 습득합니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비디오 영상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아이유노#이현무#번역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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