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폭력 끝내기 위해 행동할 때”…‘규제 강화’ 화두 꺼낸 바이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5일 15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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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3주기를 맞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 마련을 의회에 주문했다. 예전부터 총기 규제에 적극적이었던 민주당도 이에 호응하는 분위기여서 향후 의회의 움직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성명을 내고 “오늘 우리는 총기 사고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모두를 위해 애도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2018년 2월 14일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 있는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이 학교 퇴학생이었던 10대 남성이 총기를 무차별 난사해 17명이 사망했다. ‘밸런타인데이의 참사’라고도 불린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총기 폭력을 끝내고 학교와 공동체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이날 “상식적인 총기 관련 법안의 개혁”도 의회에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총기 판매를 할 때 신원조사를 강화하고, 공격용 총기나 대용량 탄창의 판매 금지, 총기 제조업자에 대한 면책 조항 제거 등을 제시했다. 이날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성명을 내고 “민주당 주도의 상원 및 바이든 행정부와 함께 우리는 파크랜드 주민과 미국 국민들이 요구하는 법안들을 만들도록 할 것”이라며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부터 총기 규제를 위한 법안 마련을 주도하는 등 이 문제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서 왔다. 총기 규제에 대한 그의 신념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이어져 지난해 3월 미시건주의 자동차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한 근로자와 이 문제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이 근로자가 “당신이 우리의 총을 다 빼앗아가려고 한다”고 공격하자 바이든 후보는 “그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총기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것일 뿐, 소유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끊이지 않는 총기 사고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더 힘을 받고 있다. 지난해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57%의 미국인들은 더 엄격한 총기 규제를 원했고 43%만 현행 또는 더 느슨한 수준의 규제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주에는 백악관의 실세로 통하는 수전 라이스 국내정책위원회 국장이 총기 사고 피해자 및 활동가들과 이 문제로 화상 회의를 열면서 정책 추진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총기 규제 강화가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미 의회는 그동안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생길 때마다 예방 대책을 논의해왔지만 강력한 법안을 요구하는 민주당과 규제 강화에 미온적인 공화당이 번번이 맞서면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 했다. 미국 시민의 총기 소유를 허용하는 ‘수정헌법 2조’ 옹호자들의 반발,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정치권 로비도 큰 걸림돌이 됐다. NRA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바이든이 이기면 수정헌법 2조는 가망이 없고 여러분은 총을 빼앗길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무차별적인 정치 공세를 벌였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58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스베가스 총기난사 사건 이후 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으로 변환시켜 주는 ‘범프 스탁’ 장치의 판매를 금지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할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상원은 공화당과 50명씩 분점한 상태라 법안 통과를 자신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상원은 필리버스터를 허용하기 때문에 주요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6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총기 규제를 막기 위한 공화당의 정치 공세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달에는 최근 부적절한 음모론을 주장하며 비판을 받아온 마조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의원이 “2018년 플로리다주 총기난사 사건은 총기규제를 위해 의도된 작전”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달 판매된 총기는 1년 전에 비해 80% 급증해 200만 정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나중에 총기 구입이 어려워질 것을 대비해 미리 사두려는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팬데믹과 각종 폭동 사태,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등도 구매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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