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전훈, 장점도 많네”…선수는 출퇴근훈련, 지역상권은 활기[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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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바꾼 프로야구 스프링캠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프로야구 스프링캠프 풍경도 바뀌고 있다. 올해에는 10개 구단이 일제히 해외가 아닌 국내에 캠프를 차렸다.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인수된 SK선수단은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에서 훈련에 들어갔다(위 사진). 롯데의 캠프인 부산 사직구장 불펜에 마련된 방한용 비닐하우스 시설(아래 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프로야구 스프링캠프 풍경도 바뀌고 있다. 올해에는 10개 구단이 일제히 해외가 아닌 국내에 캠프를 차렸다.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인수된 SK선수단은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에서 훈련에 들어갔다(위 사진). 롯데의 캠프인 부산 사직구장 불펜에 마련된 방한용 비닐하우스 시설(아래 사진).
“스프링캠프를 보는 건 나무의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일이다.” 미국의 스포츠 저널리스트 제리 아이젠버그는 프로야구 팀들의 스프링캠프를 이렇게 표현했다.

예년 이맘때 인천국제공항에는 스프링캠프를 위해 미국이나 일본 등 세계 각지로 떠나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항공사 카운터 앞에는 선수들의 짐이며 각종 훈련 장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들은 한국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향해 남들보다 일찍 봄을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KBO리그 10개 구단은 1일부터 해외가 아닌 국내에 스프링캠프를 펼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선수단의 해외 캠프가 여의치 않아졌기 때문. 코로나19가 바꾼 스프링캠프 신(新)풍속도다.

프로야구 모든 구단이 일제히 국내에 캠프를 차린 건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국내에서 캠프를 치른 구단도 있긴 했다. 2003년 한화와 2008년 현대를 해체한 뒤 재창단한 히어로즈가 제주도에서 캠프를 진행했다.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에도 쌍방울, OB(현 두산) 등이 국내에서 훈련했다.

○ SK는 제주도, 두산·LG는 이천
9일 현재 10개 구단은 전국 각지에서 캠프를 치르고 있다. 장소 유형은 크게 △안방구장 △2군 구장 △제3의 구장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안방으로 쓰는 키움을 비롯해 NC(창원NC파크), 삼성(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KIA(광주KIA챔피언스필드), 롯데(부산 사직구장) 등은 안방구장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 잠실구장 라이벌 두산(이천베어스파크)과 LG(이천챔피언스파크)는 각각 2군 구장이 있는 경기 이천에 자리를 잡았다.

유일하게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넌 건 최근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인수를 결정한 SK다. 인천 연고의 SK는 제주 서귀포 강창학야구장에 캠프를 차렸다. KT는 부산 기장현대차드림볼파크, 한화는 경남 거제 하청스포츠타운 야구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두산, KT, 한화는 이후 장소를 옮겨 2차 캠프도 진행할 계획이다. 캠프 막바지인 3월에는 구단들끼리 연습경기가 예정돼 있다.

해외 전지훈련이 일반적이었던 작년까지는 나름대로의 트렌드가 있었다. 2019년 일명 ‘노 저팬’ 사태를 촉발했던 한일 관계 악화 전에는 미국에서 1차 캠프를 치른 뒤 일본 오키나와에 모여 2차 캠프를 여는 게 대세였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팀과도 연습경기를 자주 진행하면서 ‘오키나와 리그’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일본, 호주, 대만 등에서 캠프를 진행했던 몇몇 팀들은 지난해 캠프 도중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줄줄이 항공권이 취소되는 불상사를 겪었다. 오도 가도 못 하고 발을 동동 구르던 구단들은 전세기를 통해 가까스로 국내에 돌아왔다.

○ 날씨와의 전쟁
그동안 각 구단들이 해외로 캠프를 나갔던 가장 큰 이유는 날씨였다. 종목 특성상 한겨울의 추운 날씨 속에서 운동을 하다가는 부상을 당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각 구단은 상대적으로 날씨가 따뜻한 미국이나 호주, 일본을 찾았다.

올해 국내 캠프에서도 모든 구단들이 각별히 신경을 쓰는 건 ‘온도’다. 대부분의 구단들이 남쪽 지역에 캠프를 차린 가운데 경기 이천에 캠프를 차린 두산과 LG는 난방시설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수천만 원을 들여 온풍기를 준비하고 불펜에는 가스히터 등을 설치해 선수들이 따뜻한 온도에서 공을 던질 수 있도록 했다. 실내 온도는 영상 15도 내외로 유지하고 있다. LG는 워밍업 시 LG 세이커스 농구단의 실내연습장도 활용한다.

부산 사직구장에서 훈련 중인 롯데는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1, 3루 바깥쪽 불펜에 각각 비닐하우스 시설을 마련했다. 총 800만 원의 설치비가 들었다. KIA 역시 광주KIA챔피언스필드 외야 불펜을 활용할 수 있도록 철골구조물을 설치한 뒤 천막을 덮었다. 실내연습장을 포함해 총 6명의 투수가 동시에 투구 훈련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10개 구단 중 가장 남쪽인 제주 서귀포로 내려간 SK는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캠프 첫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김원형 SK 감독은 “이 정도면 (일본 전지훈련지였던) 고치처럼 약간 쌀쌀한 정도다. 할 만하다”고 말했다. 캠프 시작 2주 전 개인 훈련차 먼저 이곳에 내려왔던 SK 주장 이재원(35)은 “어떤 날은 반팔을 입고 훈련했을 정도로 날씨가 따뜻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국내 전지훈련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돔구장을 안방으로 쓰는 키움은 날씨 고민에서 훨씬 자유로운 편이다. 외투를 벗어도 춥지 않은 정도인 영상 18도를 유지하고 있다. 선수들도 워밍업을 마친 뒤에는 유니폼만 입은 채 타격, 수비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바람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 출퇴근하며 집밥
국내 캠프의 최고 장점은 컨디션 관리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미국 스프링캠프의 경우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에 시차 적응 등을 하다 보면 하루 이틀쯤은 별다른 훈련 없이 가벼운 몸 풀기로 흘려보내는 일이 많았다.

안방구장을 활용하는 팀들의 경우 선수들은 정규시즌처럼 집에서 출퇴근을 하며 캠프를 소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 달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낯설고 물선 해외에서 훈련만 해야 했던 선수들은 올해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심신의 안정을 얻고 있다. NC 내야수 박민우(28)는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며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캠프 기간 동안 선수가 수시로 집을 오가자 오히려 가족들이 더 어색해한다는 후문이다. 해외에 나갈 때면 어려움을 겪곤 하던 전화 연결 문제도 걱정할 일이 없어 좋다는 반응이다.

안방구장을 캠프지로 사용하는 구단 중에서는 롯데가 유일하게 부산 롯데호텔에서 숙소 생활을 하고 있다. 사직구장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다. 롯데 역시 애초에 출퇴근을 할 계획이었으나 “팀워크를 다지고 서로를 알기 위해선 출퇴근보다 합숙이 더 낫다”는 새 주장 전준우(35)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거제에 캠프를 차린 한화는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를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구단으로선 식사 준비에도 이점이 있다. 해외 캠프에서는 현지 케이터링 업체나 한인 식당 등과 계약을 맺어 선수단 식사를 제공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익숙했던 구장 내 식당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식비는 절반 가까이 줄이면서 메뉴의 영양소, 다양성 측면에서 보다 양질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선수들의 요구사항을 즉각 반영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육류 위주의 고단백 식사가 선수들에게 인기다.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유일하게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SK는 이번 스프링캠프 전체 예산으로 약 6억 원을 책정했다. 종전 해외 캠프의 예산 규모(11억∼12억 원)의 절반 정도다. 다른 구단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1인당 700만∼800만 원 정도의 항공료와 호텔 숙박비 등을 아끼면서 구단으로서도 적지 않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지역 상권에 쏠쏠한 도움이 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SK의 스프링캠프지에는 선수단은 물론이고 취재진과 그룹사 직원 등이 몰리면서 인근 식당도 따라 웃고 있다. 매 식사 시간마다 식당이 붐빌 정도다. 한 식당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끊기다시피 했던 단체손님이 스프링캠프를 계기로 발길을 잇기 시작했다. 1칸 띄어 앉기 등 방역 수칙을 지키는 가운데서도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또 그룹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의 커피 100잔을 매일 훈련장으로 보내오고 있다. 캠프 기간 커피 값만 1600만 원 이상이다.

다만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다. 선수들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혹여 긴장감이 떨어지진 않을까 조심하는 모양새다. 수도권 한 구단 관계자는 “해외 캠프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일상에 변화를 주는 의미도 있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된 뒤에는 해외 캠프와 국내 캠프를 두고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홍구 windup@donga.com·김배중·강동웅 기자
#프로야구#스프링캠프#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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