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받지 않는 ‘우리끼리’ 권력[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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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음에도 ‘적과 동지’ 이분법 대응
당정청 독주체제에 폐쇄적 행보 우려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여권의 대응은 매번 뒷북을 치고 있다. “지금은 애도해야 할 때”라며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로 버티다가 뒤늦게 사과하는 일이 반복됐다. 가해자의 책임을 흐리는 ‘피해호소인’이란 표현을 고집하다가 뭇매를 맞고서야 ‘피해자’로 바꿨다. 여당 대표와 중진들의 때늦은 자성이 이어졌지만 떠밀려서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권의 김학의 사건 등 성 추문 사건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끝났어도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사실상 재수사를 지시했다. 그런데도 박원순 성추행 혐의에 대해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나기 쏟아질 때는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성 추문 사건을 놓고 한편에선 추상같은 결기를 보이다가 다른 편에선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오죽하면 외신까지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대통령이 성 추문 단체장 사건에 대해 공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을까.

윤미향 사건은 그 전주곡(前奏曲)이었다. 회계부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정의기억연대 측이 취재진을 향해 훈계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은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여권 인사들은 정의연의 회계부정은 있을 수 없다고 엄호에 나섰다. ‘적과 동지’가 정의와 공정을 가르는 절대 기준처럼 비쳤다.

정책 사이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 대통령이 6월 17일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불렀던 외교안보 분야 원로들은 대부분 비슷한 성향의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러니 나올 만한 해법은 남북협력을 더 확대하라는 정책기조 강화일 게 뻔했다. 그나마 노무현 정권 시절 외교안보 분야에선 청와대에 보수적 성향의 반기문 외교, 김희상 국방보좌관을 두고 최소한 균형을 잡으려 했던 노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현 정부에서 22번이나 고강도 대책을 내놓고도 집값을 잡지 못한 정책 실패가 분명한데도 주무 장관을 바꾸기는커녕 더 세게 하라고 주문한 역설은 이해하기 힘들다. 부동산 대책 실패의 장본인인 국토부 장관이 문 대통령과 각별한 친문 의원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버틸 수 있었을까.

외부 견제의 둑은 거의 무너졌다. 서울시 구청장 25명 중 24명이, 부산시 구청장 16명 중 13명이 여당 소속이다. 4·15총선에서 여당은 176석의 거여(巨與)가 됐다. 야당 몫으로 남겨놓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포함해 18개 상임위원장까지 거침없이 싹쓸이했다. 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지방의회도 의장단을 독식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끼리’ 공화국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치심리학의 거장인 어빙 제니스 미국 예일대 교수는 명저 ‘집단사고의 희생자’에서 강력한 응집력을 가진 조직이 내부에서 흔들리는 과정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응집력이 강한 조직은 전원 합의나 의견 일치를 중시한다. 의견 대립이나 갈등을 회피하려 하고, 특정 의견에 큰 문제가 있어도 이 의견에 동조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구성원 대부분이 이런 사고를 하면 비합리적 의견이 작동해 참사 수준의 위기가 발생한다.”

‘우리끼리’ 권력에 취하면 안팎의 쓴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견제받지 않는 독주를 할수록 민심과 멀어지게 된다. 여권은 박원순의 인권변호사 공적을 부각했지만 정작 국민들은 그런 사람이 음습한 성 추문의 당사자였다는 위선에 분노하고 있다. ‘적과 동지’라는 사생관은 그들만의 기준일 뿐이다. 민심과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끼리’ 권력이 위험한 이유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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