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낭비 피하려면 기업 지원에 ‘원칙’ 지켜야[현장에서/김형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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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오른쪽)이 15일 자동차부품산업 현장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은성수 금융위원장(오른쪽)이 15일 자동차부품산업 현장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김형민 경제부 기자
김형민 경제부 기자
“어떤 기업을 지원해주겠다는 건지 정부 기준이 아직 애매합니다. 우리도 일단 ‘손 벌려보자’는 심정이에요.”

유동성 위기를 겪는 한 기업의 고위 임원은 정부의 기업 지원 방향이 뭔지 도통 모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본 기업을 위해 40조 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준비했다. 하지만 지원 기준을 놓고 정부는 애매한 입장만 내비치고 있고, 기업들은 정부의 의도를 해석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코로나19 피해와 무관한 기업에 ‘헛된’ 희망을 준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유동성 위기 기업을 지원하면서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 원칙을 고수해왔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다. 정부는 수조 원을 분식회계한 대우조선에 10조 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고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KDB산업은행의 대우조선 담당자들은 1년 넘게 검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고초를 겪어서인지 이후 정부의 고통분담 원칙은 그런대로 잘 지켜져 왔다. 지금도 해운업계에서 아쉬움이 터져 나오긴 하지만 한진해운은 ‘원칙’에 따라 청산됐고, 현대상선은 살아남았다. 이후 성동조선, STX조선해양, 금호타이어, 한국GM 등도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처리됐다.

그런데 정부는 40조 원의 기안기금을 두고는 원칙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상 기안기금 운용의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조차 어떤 기준에 따라 이 기금을 써야 하는지 확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기안기금 지원 결정을 내리는 심의위원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5일 쌍용자동차에 대한 기안기금 지원 여부에 대해 “심의위가 결정을 내려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모호한 답만 내놓았다.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기업이 스스로 극복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기업에 기안기금을 투입하는 건 필수 불가결하다.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고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자금 집행은 최대한 신속해야 하며 지원 규모도 충분해야 한다. 더욱이 중견·중소기업에 대해선 더더욱 세심하게 살펴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련의 과정에도 원칙은 지켜야 한다. 기안기금 대상은 코로나19로 일시적 유동성을 겪는 기업에 한정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위기를 겪는 기업까지 지원하려면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

실물경제가 급반등하지 않는 이상 유동성 위기 기업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원칙 없는 기업 지원은 결국 ‘혈세 낭비’라는 화살로 돌아와 산업 전체를 위기로 내몰 수 있다.

김형민 경제부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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