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보다 ‘텅 빈 거리’가 더 무섭다… 관광 천국 유럽의 비명

김윤종 파리 특파원 입력 2020-05-21 03:00수정 2020-05-2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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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나라마다 관광업 부활 안간힘
타격 큰 남유럽, 서유럽과 갈등도…지속가능한 여행문화 만들 계기
13일 오후 ‘고흐 마을‘로 유명한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 시청사 광장. 1890년 당시 창사를 그린 빈센트 반고흐의 그림이 붙은 표지판(오른쪽) 아래에서 마스크를 쓴 주민들이 쉬고 있다. 텅 빈 광장은 코로나19 사태로 관광객이 사라진 유럽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오베르쉬르=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13일 ‘고흐 마을’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를 찾았다. 화가 빈센트 반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고흐는 생의 막바지였던 1890년 5월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정신질환이 악화돼 요양차 이 마을에 안착했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70일간 하숙집, 시청, 교회, 밀밭 등 마을 풍경을 70여 점의 그림으로 남겼다. 마을 곳곳에 고흐의 유명한 그림 속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어 연 3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평소라면 세계 각국의 관광객으로 붐벼야 할 마을 전체가 썰렁했다. 고흐의 그림으로 유명한 시청 앞 광장도 텅 비었다. 관광 안내소의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광장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마을주민 루헝 씨(41)는 생면부지의 기자에게 다짜고짜 하소연부터 했다. “식당을 운영해왔는데 요즘 할 일이 전혀 없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은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이 마을에 있는 15개 식당 모두 마찬가지예요. 정부 지원금을 신청했지만 아직 안 나왔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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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피하려다 굶어죽는다”



현재 전 유럽의 주요 관광지들은 모두 고흐 마을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내국인과 해외 관광객 모두 자취를 감췄다. 각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3월부터 국경을 닫고 자국민 이동제한령을 발령한 탓이다.

두 달이 흐른 후 경제 악화가 심각해지자 유럽 각국은 5월 중순부터 씨가 마른 여행객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16일 관광대국 이탈리아는 “다음 달 3일부터 해외 관광객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18일에는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이 “점진적으로 역내 관광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터키는 20일부터 영국, 네덜란드 등 31개국 여행객의 입국을 허용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도 25일부터 국경을 맞댄 프랑스, 오스트리아와의 이동 제한을 점진적으로 해제한다.

유럽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한 상황에서 섣부른 개방에 대한 우려도 물론 나온다. 20일 기준 러시아와 스페인의 확진자는 각각 30만 명에 육박했다. 영국, 이탈리아는 각각 20만 명을 돌파했고 프랑스, 독일, 터키 역시 모두 15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각국이 굳게 걸어 잠갔던 문을 여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정보기술(IT)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 관광업은 폭발적 성장세를 보여 왔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00년 세계 전체 국제 관광객 수는 6억7000만 명이었지만 2018년에는 14억100만 명으로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 중 절반인 7억1000만 명이 유럽을 찾는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전체 관광객 자체가 3억∼4억 명으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EU 집행위는 코로나19 사태로 유럽 관광업 일자리 1200만 개 중 640만 개가 사라지고, 월 10억 유로(약 1조3000억 원)의 손실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글로리아 게바라 대표는 “수억 명이 수년간 엄청난 재정적, 정신적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최근 국내 호텔의 95%가 문을 닫는 등 관광산업 연쇄도산이 가시화하자 관광업에 총 180억 유로(약 24조2000억 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영국 역시 올해 해외 관광객이 54% 줄어 관광수입이 15억 파운드(약 2조26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자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EU 내부 갈등도 심각


관광 재개를 둘러싼 북유럽과 남유럽의 갈등도 상당하다. 제조업과 지식산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북유럽과 서유럽에 비해 관광 및 자영업 비중이 높은 남유럽 국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훨씬 크다.

EU는 최근 코로나19 감염률이 낮거나 방역에 성공한 회원국을 선별해 이들 국가 간의 국경 및 관광지를 개방하는 소위 ‘녹색 통로(Green corridors)’ 정책을 발표했다. 영국 정부 역시 감염률이 낮은 국가의 여행객은 ‘입국 후 14일 격리’를 면제해주는 ‘항공 가교(Air bridges)’ 제도를 논의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중 관광업 비중이 높고, 자국 내 확진자 수도 많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이런 움직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해외 여행객을 유치하는 데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14일 독일 출신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다른 회원국에 특혜를 주면 EU를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탈리아는 GDP 대비 관광업 비중이 13.0%에 달한다. 포르투갈(12.5%), 스페인(11.8%)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14일 유럽 최초로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한 동유럽 슬로베니아 역시 12.3%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는 각각 관광업에 종사하는 국민이 모두 200만 명이 넘는다. IT 산업과 달리 관광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크고, 종사자 또한 대부분 서민층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막으려다 굶어죽게 생겼다”는 절규가 빗발치자 각국 정부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연간 약 8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스페인은 관광업 타격 여파로 올해 초 14%였던 실업률이 남유럽 재정위기 후폭풍이 거셌던 2012년(27%) 수준까지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고용의 20%를 관광업에 의존하는 그리스가 16일부터 전국 해수욕장 5000여 곳을 개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국가가 무리하게 여행제한을 해제해도 관광산업 정상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봉쇄령을 해제해도 여행 중 감염될 수 있다는 관광객들의 우려가 상당해 관광업 회복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 전염병의 시대, 여행의 미래는?


BBC는 코로나19로 인한 관광업 쇠퇴가 돈 문제를 넘어 유럽인의 삶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간 EU 인구의 60%인 약 2억7000만 명이 연 1회 이상 여행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1개월 이상의 긴 여름휴가가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이처럼 유럽인에게 여행, 특히 여름휴가는 힘든 일상을 견디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파리 15구에 사는 헤이몬드 씨(44)는 “유럽인들은 1년 내내 여름휴가 생각만 하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올해 휴가를 다녀오면 곧바로 내년 여름휴가 계획을 짠다. 그것이 삶의 목표이자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유럽인들은 어떤 곳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할까. 르몽드는 항공을 통한 해외여행이 아닌 국내 야간열차 여행, 자전거 여행 등 일상 속 짧은 여행을 즐기는 ‘마이크로 어드벤처(micro-adventure)’가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스인 장 폴 씨는 “올해 스페인에 놀러갈 계획을 포기했다. 집 근처에서 자전거 타기, 산책, 낚시를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게임을 통한 가상여행 콘텐츠도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14일 영국관광청은 온라인에서 영국의 유명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전문가들은 사회 전체가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시대에 맞는 관광법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U 역시 13일 앱을 통해 주요 관광지의 감염 위험 정보를 전달하고 드론, 인공지능(AI), 로봇 등을 활용해 관광지 내 사회적 거리 두기를 독려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 사태가 과도하게 많은 관광객이 특정 장소에만 몰리거나, 문화유적지에서도 소셜미디어용 사진만 찍어대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의 폐해를 상당 부분 줄여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환경 훼손 및 거주민 피해도 대폭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미 CNN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관광의 형태를 영원히 바꾸거나, 더 나은 관광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느리고 사려 깊은 관광, 지역 사회와 거주민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관광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도미니크 크레지아크 프랑스 사부아 몽블랑대 교수는 르몽드에 “인간은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창조적 사고 능력을 키운다. 이런 여행의 근본적 목표는 꼭 멀리 가지 않아도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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