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글로벌 리더 역할 제안’에…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뉴욕=박용 특파원, 김재영 기자 입력 2020-05-13 16:54수정 2020-05-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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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뉴시스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다른 나라가 들어갈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59)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48)는 12일(현지 시간)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체인의 변화를 이렇게 전망했다. 국제 분업 구조가 붕괴하기보다는 더 다양화될 것이며, 이는 특히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는 시도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국에는 기회요인이기도 하다.

부부 경제학자인 이들은 19일 서울에서 열리는 ‘2020 동아국제금융포럼’의 기조 연사로 참석한다. 올해 포럼은 방역을 위해 미국과 한국을 화상으로 연결해 진행한다. 행사에 앞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소개한다.


― 위기 이후 전개될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시기에 세계 경제를 예측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사회적 신뢰와 문제해결 능력의 위기, 심각한 양극화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번 위기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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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자’ 형태의 신속한 경제 회복은 가능한가.

“백신이 개발되고, 형편없는 정책들 때문에 위기가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과거 역사를 볼 때 매우 빠른 반등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 소비를 할 수 있고 엄청난 수요 감소에 따른 불황도 피할 수 있다.”

― 코로나19가 세계화 때문에 더 급속히 확산됐다는 지적이 있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진 건 사람들의 빈번한 이동 때문이다. 국제무역 자체는 이번 확산과 관련이 없다. (세계화의 순작용인) 글로벌 공조는 ‘코마 상태’인 세계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세계화에 반하는 사례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 글로벌 공급체인의 변화가 예상된다.


“기업들 입장에선 글로벌 공급체인에서 얻는 이득이 너무 크다.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시나리오는 기업들이 앞으로 자사 부품 공급처를 어느 한 국가-특히 중국-에 의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공급처 다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일부 시장에 다른 국가들이 침투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바네르지 교수는 “한국이 가진 불리한 점으로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꼽았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느냐는 질문에 “수출국이든 수입국이든 다변화에 따른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 어떤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보는가.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대응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의 소국인 토고 사례도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정부에 대한 집단적 신뢰가 강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정신을 공유하며 다시 뭉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 미국, 아마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은 미숙한 대응 때문에 제도에 대한 신뢰가 더욱 낮아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들의 힘을 모으는 것도 힘들어질 수 있다.”

― 미국이 경제 재개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침을 따르지 않고 경제활동을 재개하려는 무계획적인 시도는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미 육가공업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육류 가공기업들은 대통령의 ‘필수 서비스’ 선언으로 보호를 받으면서도 노동자 보호 조치는 별로 하지 않았다. 일부 공장은 집단 감염지가 됐다. 많은 미국 기업들의 DNA에는 노동자 보호 개념이 없다. 정부가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당한 시간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 미국 실업률이 25%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신규 실업급여 청구자 수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문제는 많은 실직자들이 미래를 너무 걱정해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 뒤에도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일자리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행정부, 의회,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해야 할 일은 훨씬 더 오래 실업수당과 건강보험을 보장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는 더 크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한 3월 중순 이후 7주간 3350만 명이 신규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상 초유의 ‘실업대란’이 일어났다. 미 연방정부는 실직자들에게 주당 600달러의 추가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 한국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신속한 조치와 효과적인 접촉자 추적 관리는 놀라운 본보기다. 미국은 이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보건 측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보여줬다. 이런 노력이 경제에도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은 고용보험 확대, 소규모 자영업자 지원 등의 조치를 했다. 이는 많은 국가들이 한 일들이다. 적자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이런 조치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 코로나19 위기 이후 한국이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는데.

“수익이나 생산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후생을 존중하는 사회 구축 방안에 대한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다. 단기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새로운 규칙을 터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위기가 악화된 것은 기업들이 이익 극대화와 기업가치 분배에만 지나치게 몰두하고 노동자와 사회 구성원 보호에 충분한 관심을 쏟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한국은 더 나은 균형을 찾는 방법을 세계에 보여줄 준비가 돼 있다.”

― 한국에서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해야할지, 선별 지급해야할지 논란이 있었다.

“통계가 열악하고 이행 능력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모두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소득’이 더 나은 선택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보다 부유하고 복잡한 사회는 대상자를 선별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국가들에 ‘보편적 초(超)기본소득’을, 부유한 나라들에는 더 정교한 ‘표적 대응(targeted response)’을 제안한 바 있다.”

― ‘포퓰리즘적 현금 살포’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 함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꽤 많다. 꼭 필요할 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돈을 유용하게 쓰고, 일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보장 제도가 가난한 사람들을 안주하게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야말로 이런 가정을 재고할 수 있는 좋은 시기다.”

― 코로나19에 따른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막기 위한 방법은?

“경기 침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완화시키는 조치를 해야 한다. 물론 모든 국가가 이런 조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동등하게 갖고 있진 않다. 지원 확대 조치를 너무 일찍 중단하면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이 출간됐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뉴노멀 시대’에 좋은 경제학은 어떤 의미인가.

“‘좋은 경제학’은 이념이 아니라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겸손하다. 선지자 행세를 하긴 하지만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런 경제학이 필요하다.”

― 노벨 경제학상 수상 소감으로 “라듐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는 상금으로 1그램의 라듐 원소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본인만의 ‘라듐’을 찾았나.

(뒤플로 교수) “현 시대의 ‘라듐’은 세계 각지에서 연구 중인 젊은 연구자들이다. 우리는 상금 전액을 빈곤 퇴치를 위한 혁신적 해법 연구를 지원하는 ‘바이스펀드’에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재단 창업자인 앤디 바이스 씨가 우리가 기부한 약 100만 달러에 더해 5000만 달러를 매칭 펀드로 기부하기로 했다.”

인도 출신인 바네르지 교수는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도 조언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두 부부가 집에서 함께 연구할 시간이 늘지 않았을까. 답변은 평범한 부부들과 같았다. 이들은 “6살과 8살 2명의 아이가 있는데,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야 하는 시기여서 연구에 쏟는 시간이 이전보다 엄청나게 줄었다”며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는

△1961년 인도 뭄바이 출생 △1981년 인도 콜카타대 졸업(경제학) △1988년 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1988~1992년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조교수 △1992~1993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조교수 △1994~현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Poor Economics)’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등 저술(뒤플로 교수와 공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

△1972년 프랑스 파리 출생 △1994년 파리고등사범학교 졸업(역사학 경제학) △1999년 MIT 경제학 박사 △1999~2002 MIT대 조교수 △2002~현재 MIT대 종신교수(최연소 임용) △2010년 존 클라크 메달 수상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두 번째 여성 수상자이자 역대 최연소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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