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동하지 않는 안전대책이 참사 불렀다[동아 시론/이창우]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입력 2020-05-13 03:00수정 2020-05-13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여럿 희생… 안전수칙 관련 법, 결국 무용지물
공사에 쓰이는 자재를 아예 바꿔야
샌드위치패널 등 가연성물질이 원인… 불연성 자재 의무사용 法 필요하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정부는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해 왔다. 그 일환으로 건축법, 소방시설법,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등에 변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번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해 ‘후진국형 재난’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대책이 부족한 상태에서, 결국 그동안 마련된 대책들은 예방 차원이나 초기 대응 관련 대책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공사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안전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필자는 이천 화재로 인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화재 예방은 점화(點火)원과 가연(可燃)물을 관리해 화재 발생 빈도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화재 예방 차원에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241조(화재위험 작업 시의 준수 사항)가 환기 조치와 화재감시자 제도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 사건 현장에서는 관련 규정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화재 사건 현장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대책과 안전관리 시스템은 결국 현장에선 ‘규제’일 뿐이다. 굳이 법에 규정하지 않더라도, 공사 현장 화재 예방 및 안전관리 시스템은 시공사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아직까지 안전 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현실에서 시공사의 ‘자발적인 참여’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안전 문화나 안전 풍토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기적으로 관리감독 기관은 공사 현장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하며, 작동하지 않을 땐 강경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화재 현장 인명 피해의 70∼80% 정도가 연기에 의한 ‘질식사’라는 것이다. 이번 사고가 난 물류창고뿐만 아니라 대형 건축물도 완공 전에는 ‘방화 구획’의 개념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가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연기가 쉽게 이동하고, 화염도 확대되기 쉽다. 이런 공간적 특성과 화재에 취약한 우레탄, 샌드위치패널 내부재는 작은 에너지에도 쉽게 불이 붙고 연소가 빠르게 진행된다. 이때 불완전연소가 이뤄져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가 발생한다. 이는 재료적 특성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물류창고나 공사 현장처럼 방화 구획의 개념이 성립될 수 없는 공간에서는 공사 기간 중 임시 방화 구획을 만들어 공사를 진행할 필요성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임시 방화 구획을 설정하고 공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부수적인 많은 문제가 있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주요기사

그렇다면 가연성 물질을 최소화해 연기 발생을 줄이고 연소 확대를 늦추는 방법이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이후 전문가들은 샌드위치패널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외장재로 ‘타지 않는 불연재’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바닥 면적 3000m² 이상의 건축물만 난연성(불에 잘 타지 않는 성질)의 샌드위치패널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2015년에서야 바닥 면적 600m² 이상으로 적용 대상이 늘었다. 가연성 샌드위치패널의 편리성, 경제성 등의 장점과 화재 발생으로 치러야 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맞바꿔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결론적으로 화재 사고에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가연성 물질의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이것이 가장 시급하고 절대적이다. 특히 외장재인 샌드위치패널 규제가 가장 시급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어야 인명 피해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8일 국토교통부는 가연성 샌드위치패널의 사용을 금지하고 불연재만을 사용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그나마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예방 및 초기 대응 차원에서 ‘현장에서 작동하는’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반복되는 후진국형 대형 사고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이천 물류창고#화재#안전수칙#가연성 물질#불연성 자재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