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의 ‘스포츠세탁’ 논란

이원홍 스포츠전문기자 입력 2020-05-01 03:00수정 2020-05-01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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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을 인수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오른쪽)와 아랍에미리트 왕족으로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이들이 정치적인 속셈으로 EPL을 이용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인스타그램·동아일보DB
이원홍 스포츠전문기자
어디선가 본 듯한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프로축구 무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5)가 대표로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펀드(PIF)가 EPL의 뉴캐슬을 인수한다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PIF의 대표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질적인 구단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언론들은 PIF의 총자산을 약 2300억 파운드(약 349조 원)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EPL 최고 부자 구단주로 꼽히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 구단주 총자산(약 35조 원)의 10배 규모로 알려졌다. 아랍에미리트(UAE) 왕족이자 부총리인 셰이크 만수르가 2008년 맨시티를 인수한 뒤 거액의 투자로 EPL의 판도를 흔든 것처럼 PIF가 EPL의 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PIF의 뉴캐슬 인수는 EPL 사무국의 마지막 검토 단계에 들어섰다. 대체적으로 PIF의 뉴캐슬 인수가 임박했다고 보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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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PIF의 뉴캐슬 인수에 반대했다. 앰네스티 영국 지부는 “많은 인권 문제를 안고 있는 사우디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EPL에 진출해 자국 이미지를 세탁하려 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자신을 비판했던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살해당한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 장면들은 12년 전 셰이크 만수르가 맨시티를 인수할 때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셰이크 만수르의 엄청난 재력이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셰이크 만수르의 맨시티 인수가 “UAE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점이 비슷하다. 맨시티는 셰이크 만수르가 인수한 후 2조 원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 초호화 선수단을 구성한 뒤 EPL 4회 우승을 차지했다. 맨시티는 EPL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UAE의 지원과 노력이 부각되도록 간접 홍보를 해왔다는 시각이 있다. 이를 통해 잦은 인권 탄압으로 실추된 UAE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팬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켜 이를 UAE에 필요한 각종 마케팅에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 비판자들의 시각이다. 표면적으로는 셰이크 만수르가 맨시티를 인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UAE 왕가가 이미지 관리를 위한 치밀한 계산 아래 맨시티 인수를 결정했다는 것이 2018년 독일 슈피겔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내용이었다. 이어 국제앰네스티도 소위 ‘스포츠세탁(sportswashing)’ 혐의로 맨시티를 비판했다. ‘스포츠세탁’은 좋지 않은 이미지를 지녔던 국가나 단체가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통해 팬들에게 다가가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과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뜻이다. 슈피겔과 앰네스티는 UAE가 국내에서 인권운동가들을 탄압했으며, 예멘 내전에 개입하며 포로들을 고문하고 학대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국제앰네스티가 PIF의 뉴캐슬 인수를 반대하는 이유도 ‘스포츠세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우디와 UAE는 이러한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사우디 측은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더 많은 스포츠 활동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PIF가 뉴캐슬 인수에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대대적인 혁신에 나설 것은 분명하다. 벌써부터 뉴캐슬이 초고가의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려 한다는 소식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PIF는 EPL 진출 선배 격인 셰이크 만수르가 받고 있는 비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셰이크 만수르의 맨시티는 불법 자금으로 거액의 선수들을 데려와 돈으로 우승을 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맨시티의 불법 자금을 조사해야 한다는 국제 여론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결국 맨시티는 구단이 적법하게 벌어들인 수익 이상으로 돈을 쓰지 못하게 하는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위반으로 최근 유럽축구연맹(UEFA)으로부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등을 박탈당하는 중징계를 받았다. 결국 우승은 차지했지만 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함께 얻었다. PIF가 뉴캐슬을 인수하려는 진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좋은 평판과 이미지는 돈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원홍 스포츠전문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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