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손주의[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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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별 변호사·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
장한별 변호사·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
“모두들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입니다.”
 
―이종철 ‘까대기’ 중
 
6년간 택배 상하차 일로 생계를 꾸렸던 만화가 이종철 씨가 독자와 택배 종사자분들께 전하는 당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방역을 위해 우리 국민들은 일상의 제약을 감수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차분히 실천하고 있다. 사재기 없는 시민의식에 대한 외국의 칭송도 이어지고 있고. 그런데 숨은 유공자가 따로 있다. 불안에서 싹트는 사재기의 불씨는 물건을 2, 3일 내(수도권에서는 당일이나 새벽에도) 무료 혹은 2500원에 배송해주는 택배 종사자들에 의해 꺼져 버렸다. 지난달 40대 택배기사가 새벽배송 중 과로로 사망했다. 청년들은 택배 상하차 작업을 ‘지옥의 알바’라고 부른다. 택배기사가 받는 건당 배송 수수료를 올려주고, 무겁고 포장이 잘 찢어지는 생수는 동네 가게에서 사자는 호소도 많다. 하지만 우리의 눈과 손가락은 가격 비교 앱의 ‘택포’(택배비 포함) 최저가를 좇는다. 그 결과 지난해 국내 택배시장은 전년 대비 8.3% 성장해 6조 원을 넘었고, 택배 평균 단가는 2018년보다 24원 떨어져 2205원이 됐다.

택배에 ‘파손주의’ 표시를 붙이면 발송인은 신경 써준 티를 낼 수 있고, 수령인도 배려 받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물건의 보호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택배 종사자의 노동과 안전을 규율하는 법령들의 현실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택배업을 규율하기 힘들다는 각계의 요구를 모아 지난해 8월 생활물류 서비스산업 발전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사업자의 피로 관리 및 안전시설 설치 의무도 담겨 있는데, 20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될 예정이다. 아쉽다. 이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부활해 택배 종사자들의 몸과 마음의 파손을 방지하는 법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장한별 변호사·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종철#까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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