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계층 돕자” 민간 주도 ‘순천형 권분운동’ 눈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선시대 극빈자 구제 재물나누기… 허석 순천시장이 각계에 제안
쌀 등 1주일 분량 담은 생필품 상자
무료급식 중단 이웃 1000명에 전달

봉사단체인 라일락 회원과 시민 등 80여 명이 22일 전남 순천시 팔마로 팔마체육관에서 소외계층 1000가구에 전달할 권분상자(꾸러미)를 만들고 있다. 순천시 제공
봉사단체인 라일락 회원과 시민 등 80여 명이 22일 전남 순천시 팔마로 팔마체육관에서 소외계층 1000가구에 전달할 권분상자(꾸러미)를 만들고 있다. 순천시 제공
22일 오전 8시 전남 순천시 팔마로 팔마체육관. 지역 봉사단체인 ‘라일락’ 회원과 시민 80여 명이 모여 상자에 쌀, 김치, 라면, 마스크 등을 담았다. 이들은 3시간 동안 꼼꼼하게 생필품 상자 1000개를 만들었다. 지난해 결성된 라일락은 원래 자원봉사자의 현장 활동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상자 1000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무료급식이 중단되면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이웃 등 소외계층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상자 1개에는 소외계층 한 가구가 1주일간 먹을 수 있는 분량을 담았다. 강선임 라일락 봉사단장(51·여)은 “소외계층이 가장 필요할 생필품 항목을 정하는 등 준비 과정에 1주일이 걸렸다”며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이웃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순천시는 23일 코로나19 여파로 무료급식 등이 중단돼 어려움을 겪는 이웃 1000명에게 권분상자(꾸러미)를 전달했다. 순천시 공무원들은 이날 소외계층 가구를 직접 방문해 권분상자를 전달하며 희망의 말을 건넸다. 권분상자를 건네받은 김모 씨(82·순천시 조곡동)는 “코로나19로 인해 무료급식이 중단돼 난감했는데 먹을거리를 받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권분(勸分)은 조선시대에 고을 수령이 관내의 부자들에게 권해 극빈자를 구제하던 것을 일컫는다. 허석 순천시장은 이달 초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취약계층을 위해 순천형 권분운동을 각계에 제안했다. 허 시장은 솔선수범의 의미로 1000만 원을 순천형 권분운동에 기부했다.

순천형 권분운동의 첫 실천인 상자 1000개 만들기는 16일 순천 농산물도매시장 내 팔영청과 송광현 대표(58)와 그의 가족들이 10년간 모은 적금 등을 보탠 5000만 원을 기부한 것이 씨앗이 됐다. 송 대표는 30여 년 동안 과일을 팔아온 상인이다. 젊었을 때 10년 동안 전남 고흥에서 과일을 구입한 뒤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 2001년부터 순천 농산물도매시장에서 중도매인으로 과일 도소매를 했다.

송 대표는 가족회의를 통해 5000만 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송 대표는 “기부 사실이 많이 알려져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소외계층에 권분상자를 전달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흡족하다”고 말했다.

허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시민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각계의 자발적 동참으로 순천형 권분운동이 보다 더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순천형 권분운동#코로나19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