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물 사라지는 인천 신흥동 재개발지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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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있는 일본식 고급 주택 등 민간단체 나서 20채 드로잉 작업
“역사가치 높은 독특한 건축물 인천시가 사들여 보존해야”

인천 중구 신흥동 지역주택조합 개발 현장에서 곧 철거될 근대 일본식 건축물 기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건축재생공방 사람들. 이곳은 110년 전 쌓은 축대가 있어 긴담모퉁이로 불린다. 건축재생공방 제공
인천 중구 신흥동 지역주택조합 개발 현장에서 곧 철거될 근대 일본식 건축물 기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건축재생공방 사람들. 이곳은 110년 전 쌓은 축대가 있어 긴담모퉁이로 불린다. 건축재생공방 제공
24일 근대 일본식 건축물을 비롯한 약 500채의 옛 건물이 몰려 있는 인천 중구 신흥동 골목을 작은 굴착기가 누비고 다니며 벽체와 돌담을 허물고 있었다. 지역주택조합이 만들어져 재정비사업 현장이 돼버린 이곳은 올 3월 철거를 시작했다. 3개월 남짓 지난 현재 옛 가옥의 절반가량은 남아 있다. 광복 이후 인천시장 관사로도 쓰인 인천부윤(府尹·옛 벼슬 이름) 관사 옆 일본식 2층 고급주택은 아직 헐리지 않았다.

‘건축재생공방’ 소속 드로잉작가, 영화감독, 사진작가, 큐레이터, 건축사 등 6명은 설계도 비슷한 도면을 그리고 주택 곳곳을 영상과 사진으로 찍으며 이 일본식 고급주택의 흔적을 기록했다. 이들과 함께 철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작은 마당에 향나무가 심어져 있고 실내에는 벽에서 뜯어낸 듯한 나무판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무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서니 커다란 다다미방 형태 마루가 보였다. 천장에는 전깃줄과 애자(碍子)가 옛 모습 그대로였고 방 한쪽에는 조그만 다락과 벽장이 보였다. 옛 온수난방기인 라디에이터가 벽체에 설치돼 있었다.

이날 작업에 참여한 일본인 가마다 유스케(鎌田友介·30) 씨는 “미국 중국 대만 브라질 등지에 남아 있는 일본식 근대건물을 비교 조사하고 있다”며 “신흥동 옛 주택은 규모가 큰 데다 설계도 실험적이며 마당의 향나무와 단풍나무는 모두 일본에서 갖고 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건축재생공방은 신흥동 철거지역의 건축가치가 높은 주택 20채 정도를 골라 기록한 뒤 올해 말 책과 자료집으로 펴낼 계획이다. 사진과 영상 전시회도 열기로 했다. 각 분야 전문가 6명이 한 팀을 이뤄 주택 한 채당 2, 3주간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재개발을 추진하다가 주택조합지구로 전환한 신흥동 지역 1만1150m² 터에는 현재 지상 29층, 668채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철거지역 주변에는 옛 인천시립도서관(현 율목도서관), 1906∼1908년 축조된 높이 10m 안팎의 석축이 남아 있다. 이 석축은 답동과 싸리재를 연결하는 신작로를 내면서 쌓은 것으로 아래에는 방공호까지 파놓은 독특한 건축기법을 간직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일대를 긴담모퉁이라고 부른다.

박정숙 인천시의원은 “원형이 잘 보존된 인천부윤 관사가 다행히 헐리지 않고 사유재산으로 남아 있다”며 “역사가치가 높은 이 관사를 인천시가 사들여 의미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긴담모퉁이 바로 위쪽 율목도서관 일대도 보존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율목도서관이 들어선 자리는 인천항 개항 직후 인천해관(옛 세관) 통역관이던 중국인 우리탕(吳禮堂)의 과수원이었다가 일본인 사업가가 별장을 지었다. 이 별장건물은 어린이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는 “전북 군산이나 전남 목포에 남아있는 일본식 주택에 비해 신흥동 적산가옥은 아주 커서 방마다 설계가 다르고 고급 목재를 썼다”며 “철거하더라도 건축자재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근대 일본식 건축물#인천 신흥동 재개발지역#근대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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