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하논 분화구’ 습지복원 타당성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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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2029년까지 2600억 투입… 습지복원 계획 정부 확답 받지못해
습지원형 기록 없고 논밭으로 활용… 제주 유일 논농사마저 사라질 위기

국내 최대 규모 분화구인 것으로 알려진 작은 화산체인 제주 서귀포시 ‘하논’에 대해 습지형태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하논은 조선시대부터 제주지역의 중요한 논밭농사 지역이자 1901년 신축교란의 배경지역이다. 이 때문에 자연생태, 인문, 농업사를 포함한 사업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국내 최대 규모 분화구인 것으로 알려진 작은 화산체인 제주 서귀포시 ‘하논’에 대해 습지형태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하논은 조선시대부터 제주지역의 중요한 논밭농사 지역이자 1901년 신축교란의 배경지역이다. 이 때문에 자연생태, 인문, 농업사를 포함한 사업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국내 최대 규모의 분화구를 간직한 오름(작은 화산체)으로 알려진 제주 서귀포시 ‘하논’을 습지 형태로 복원하는 사업이 타당한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복원 사업과 관련한 사업비 확보도 쉽지 않아 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논은 동서 방향 1.8km, 남북 방향 1.3km의 마르(Maar·분화구 바닥이 지표면보다 낮은 화산체)형으로 오랜 기간 내부가 연못이나 습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만 년가량 퇴적물이 보전된 곳으로 고식생학 고생물학 기후학 등에서 연구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논밭으로 쓰인 하논은 1990년대 일본인 학자에 의해 연구가 시작됐으며 국내에서는 한국해양연구원이 2002, 2003년 퇴적물 분석 작업을 했다.

○ 하논 분화구 습지 복원 타당성 의문

제주도는 올해부터 2029년까지 12년 동안 국비 2612억 원, 지방비 14억 원 등 2626억 원을 투입해 하논 분화구 118만8400m²를 습지로 복원하는 사업계획을 수립했다고 4일 밝혔다. 막대한 국비가 투입되는 사업이어서 정부와의 조율과 국책 사업화 등이 핵심 요소이지만 아직까지 정부로부터 확답을 받지 못했다. 제주도는 우선 내년 하반기에 하논 분화구 습지 보호지역을 신청해 국비 지원 근거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하논 분화구를 습지로 복원하는 계획의 타당성이다. 무엇보다 습지 원형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들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펴낸 ‘탐라지’에 하논에 대해 ‘빈조(큰개구리밥)가 많음으로 조연이라 이르고 또 게도 있다. 후에 동쪽 옆을 뚫어서 그 물을 나누어 논밭을 만들었다’는 정도만 기록돼 있다. 서귀포시의 한 향토사학자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논밭으로 활용된 하논 분화구를 훨씬 이전인 원시 모습으로 복원하는 방향이 맞는지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하논 분화구를 습지로 만들면 현재 제주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논농사마저 역사적으로 사라진다.

○ “자연, 인문, 농업사를 포괄하는 사업 필요”

하논에는 1900년 한라산 이남 지역에서는 최초의 성당인 ‘한논성당’이 설립된 후 종교공동체가 형성됐다. 1901년 봉세관의 조세 포탈과 프랑스 선교사를 앞세운 천주교의 횡포 등에 맞서 토착민이 봉기한 민란인 신축교란(일명 이재수의 난)이 발생한 핵심 지역이다. 신축교란 이후 종교공동체가 사라지고 농민 일부가 거주하다 ‘제주 4·3사건’으로 마을이 모두 불탔다. 6·25전쟁 이후 새로운 감귤농사와 함께 논밭농사가 다시 시작됐다.

학계 관계자는 “하논 분화구 복원은 자연생태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근본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 복원한다면 자연생태 습지, 종교 및 마을공동체 이야기, 농업역사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논 분화구에는 21만 m² 규모의 논을 비롯해 주택 30여 채, 창고 50여 개, 농사용 하우스 10여 동과 분묘 등이 있으며 최근 동남쪽 입구 쪽으로 다가구주택이 신축되고 있다. 토지 소유주들은 복원사업 대상 용지를 보전녹지에서 자연녹지로 용도변경한 제주도의 조치에 대해 “보상금을 적게 주려는 것”이라며 원상 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제주도는 2014년 하논 분화구 복원 기본계획 용역을 완료한 후 5차례에 걸쳐 하논 분화구 복원·보전사업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했고 지난해 방문자센터를 준공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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