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름시름 앓던 쥐가 결국 대변에 피까지 섞여 나오는 상황을 맞는다. 장염이다. DSS라는 약품을 실험용 쥐에게 먹이면 장염을 일으킬 수 있다. 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동물실험이다.
앞으로는 이처럼 동물에게 미안할 일은 점차 없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물 대신 인체 세포를 배양해 엄지손톱만 한 플라스틱 조각에 담은 실험기기 ‘장기칩’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병의 원인을 동물 없이 알아내는 단계다.
이 기술의 주인공은 장염으로 괴로워하는 동물을 줄일 방법을 찾던 대학원생과, 6년 전 장을 모사한 장기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지도교수. 이들은 실험동물 없이 자체 개발한 장기칩을 사용해 장염의 발생 원인을 밝혀 10월 말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신우정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의공학과 연구원과 김현중 교수팀은 미세한 필터를 이용해 장 모사 장기칩을 두 층으로 제작했다. 먼저 위층에는 죽지 않고 계속 증식하는 세포(암세포)로 만든 장 상피세포를 넣고 키워 융모 모양의 구조까지 갖춘 장 내부 환경을 만들었다. 상피세포는 서로 단단하게 결합돼 아래층에는 혈액에서 분리한 면역세포를 키워 장 외부의 혈관을 흉내 낸 환경을 만들었다.

원래 장은 상피세포들이 아주 단단히 결합해 있어 ‘물샐틈없이’ 장 내외부를 서로 보호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 장염이 생기면 결합 조직이 흐트러지며 구멍이 생기고, 장내 미생물이 그 구멍을 통해 장 외부의 혈관에 들어가 면역세포를 만나며 문제를 일으켰다. 기존에는 DSS가 장 상피세포를 파괴할 거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세포 자체의 파괴는 주원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치료나 증상 완화를 위한 실용적인 지침도 얻었다. 유산균 등 몸에 이로운 미생물을 의미하는 프로바이오틱스는 원래 장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연구팀이 확인해 보니, 장의 벽이 망가진 상태에서 유산균 등을 섭취하면 이 미생물들이 장 밖으로 새어나가 오히려 문제가 커졌다. 심하면 패혈증까지 일으켰다. 장 내벽에 상처가 심할 때 유산균은 신중하게 처방받아야 된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는 장기칩을 이용해 질병의 발병 원인과 과정을 밝힌 세계 첫 사례다. 신 연구원은 “앞으로 환자개인의 세포와 줄기세포를 이용한 장기칩을 만들어 개인의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반영한 ‘환자 맞춤형 칩’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