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의 신화 “성취하는 기쁨이 먼저… 성공은 저절로 따라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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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그룹 박순호 회장 인터뷰

세정그룹의 박순호 회장은 맨손으로 창업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그룹을 만든 인물이다. 대한민국 자수성가 신화에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 열정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는 경남 마산의 작은 니트의류 도매상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밤낮없이 일하던 청년으로 생산 과정부터 옷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익히면서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 사업에 나설 때만 하더라도 창업 자금이 없어서 기계 제작소에서 무작정 편직기를 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열정과 집념을 인정받은 덕분에 기계를 빌려 가까스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키워드는 열정이다.

“그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게 우선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공 사례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불한 대가 이상의 가치

박 회장은 의류도매에서 시작해 생산시설을 확장하고 브랜드사업에 뛰어들면서 제조와 유통까지 섭렵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 성공시키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그는 손을 대는 것마다 성공 스토리를 썼다.

더구나 지방에선 패션사업이 크는 데 한계가 있다는 통설을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이는 초창기부터 고수해온 품질제일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나는 나의 혼을 제품에 심는다’는 창업이념처럼 고객에게 부끄럽지 않은 옷을 만들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고객이 지불한 대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제품을 제공하고자 하는 품질제일주의가 그의 소신이다. 이는 철저한 연구개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세정 소년소녀가장 및 독거노인 돕기 행사기념.
세정 소년소녀가장 및 독거노인 돕기 행사기념.
세정의 대표적인 브랜드 ‘인디안’이 만들어진 배경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면서 기업을 키워냈는지 잘 드러난다. 세정의 효시인 동춘섬유는 당시 시장에서 잘 팔리던 ‘독립문 셔츠’를 연구해 품질에선 뒤지지 않는 터틀넥 티셔츠를 만들어냈다.

“품질엔 자신 있었는데, 문제는 독립문과 같은 브랜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브랜드를 가지고 있어야 경쟁이 가능하다는 게 저의 생각이었고요.”

고심 끝에 그는 일단 큰 시장인 서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고 무작정 기차표부터 끊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들른 부산 중앙동 서점에서 그는 어느 책 표지에 눈길이 꽂혔다. 인디언 추장이 말을 타고 광활한 평야를 바라보는 이미지였다. 그 쓸쓸함이 마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인디안이라는 단어가 그의 뇌리에 스치는 순간이었다. 그길로 그는 인디언 모습을 스케치하면서 자수로 이를 박아서 판매하겠다는 아이디어까지 구체화했다.

이후 그는 서울에 올라가 남대문시장에서 독립문 티셔츠를 판매하는 도매상을 찾아갔다. 품질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처음엔 부산에서 온 청년을 보고 반신반의하던 도매상은 품질에 반해 독점 계약을 먼저 제안할 정도가 됐다.

주문량이 쏟아지고 물건을 대기도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지만 박 회장은 과감히 아이템을 늘리는 결단을 내렸다. 바지와 점퍼까지 생산하면서 토털패션 그룹으로서 면모를 서서히 갖춰나갔다.

적지 않았던 위기… 그때마다 교훈 남겨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엔 시장 수요를 예측하지 못하고 찍어낸 제품 때문에 대량의 재고를 떠안아야 했고 심각한 자금난을 겪어야 했다. 박 회장은 지금도 그 시절만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회상한다. 자신감은 가지되 분석을 하지 않으면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교훈은 그때 얻었다.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야심 차게 추진했던 세정텔레콤의 부진도 그가 뼈아프게 느끼는 대목이다. 이때 그는 패션산업에 다시 집중하면서 기업의 반등을 이끌 수 있었다. 어려운 와중에도 정찰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저가 할인 공세 속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것을 우선시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속에서 다른 브랜드들이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쓰러질 때 인디안을 필두로 한 세정그룹의 패션 브랜드들의 위상은 높아졌다.

박 회장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오히려 매장을 확대하고 대형매장을 선보인 역발상 전략은 위기 극복의 벤치마킹 사례이기도 하다. 1988년 대리점 전환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승부사답게 오히려 위기에서 판단이 빛났다는 평가를 듣고 있기도 하다.

박 회장은 슬하에 3명의 딸을 두고 있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셋째 딸인 박이라 세정과미래 대표(세정그룹 부사장)는 시장에서 주목하는 2세 경영인으로 통한다. 한때 영캐주얼 시장에서 주춤했던 ‘니(NII)’를 브랜드 리뉴얼에 성공시키는 데 이어 최근엔 동춘175 프로젝트까지 성공시키면서 탁월한 기획 감각을 가진 경영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기업과 브랜드의 전통은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전략을 가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유통과 제조라는 구분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기업으로서 세정그룹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박 회장은 자체 유통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유통 전문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동춘175는 그 시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학선 기자 suni12@donga.com
#중소벤처기업#중소기업#세정#박순호 회장#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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