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수비 늪에 빠진 강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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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브라질-아르헨 등 첫승 무산

러시아 월드컵 초반 11경기는 ‘최강국의 실종’으로 요약할 수 있다.

18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 브라질마저 스위스(6위)를 상대로 무승부에 그치면서 이날까지 러시아 월드컵 첫 경기를 마친 ‘톱5’는 모두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앞서 아르헨티나(5위)가 아이슬란드(22위)와 1-1 무승부에 그친 데 이어 이날 1위 독일은 멕시코(15위)에 덜미를 잡혔다. 4위 포르투갈도 스페인(10위)과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브라질과 독일,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동시에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이 월드컵 첫 경기에서 패한 것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서독 1-2 알제리) 이후 36년 만이다.

전반 20분 상대 페널티 박스 인근에서 필리피 코치뉴(26·브라질)의 환상적인 선제골이 터질 때만 해도 브라질이 쉽게 승점 3점을 가져가는 듯했다. 하지만 전반 남은 시간에 여러 번의 추가 골 기회를 날리면서 스위스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후반 4분 코너킥에 의한 슈테펜 추버의 헤딩골이 터지자 스위스는 수비를 자기 진영으로 바짝 내려 ‘승점 1점’ 챙기기에 집중했다.

이후 브라질은 밀집 대형을 짠 스위스 중앙을 피해 양 측면을 공략했지만 평균 신장 183cm로 브라질(180cm)보다 3cm가 더 큰 스위스의 장대 수비에 막혀 더 이상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최종 스코어는 1-1. 직전까지 최근 네 번의 A매치(국가대표 경기)에서 연승 행진을 벌이던 브라질은 이날만큼은 ‘우승 후보국’다운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브라질과 스위스의 이러한 경기 방식은 대회 초반 왜 축구 강국들이 고전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력이 비슷한 포르투갈(4위)-스페인(10위)을 제외하면 ‘빅5’를 상대하는 팀들은 모두 자기 진영에 진을 치고 역습을 노리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여기에 상대 에이스를 막기 위한 거친 수비까지 가세하면서 이 같은 전술의 파괴력이 배가되고 있다.

실제로 네이마르는 이날 10번의 파울을 당해 “거의 폭행을 당한 수준”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스위스 대표팀의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55) 또한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네이마르를 무력화하는 것이 브라질에 대비하는 중요한 전략”이라며 “스위스 선수들의 투지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해 상대 에이스를 향한 거친 수비가 계획적이었음을 시사했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네이마르를 전담하는 마크맨이 옐로카드를 받자 새로운 선수를 교체 투입해 또 거칠게 막는 방식을 썼다”며 “나머지 아르헨티나-아이슬란드, 독일-멕시코 경기를 봐도 상대적 약팀은 자기 페널티 박스 안에서 진을 친 채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약팀이 스위스나 아이슬란드처럼 평균 신장이 클 경우 세트피스에서, 멕시코처럼 발 빠른 공격수가 있으면 전광석화 같은 공격 한 방을 노리며 자기 진영으로 잔뜩 움츠린다는 분석이다. 이는 약팀이 즐겨 쓰는 방식이긴 하지만 수비 정도와 골 결정력이 이번 대회에 들어와 높아졌다는 것이 김 위원의 해석이다. 물론 조별예선 통과보단 16강 이후에 초점을 두는 강팀들의 ‘컨디션 조절’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18일까지 치러진 11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최고 랭커는 호주를 상대한 7위 프랑스다. 하지만 이마저도 졸전 끝에 비디오판독(VAR)에 의한 페널티킥과 상대 수비의 자책골에 힘입어 2-1로 경기를 가져간 ‘진땀 승’이었다. 이에 프랑스의 한 현지 언론은 “테크놀로지(VAR)와 행운(자책골)에 기댄 힘겨운 승리였다”고 혹평한 뒤 “스타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원 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평가했다.

절대 강자가 없는 월드컵 첫 라운드가 거의 끝나 가고, 20일이면 본선 두 번째 경기를 치르는 팀들이 나온다. 강호로 꼽혔던 국가들이 초반 부진했던 흐름을 끊을지가 관심사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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