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 하루 앞두고 유혈사태… 3차 인티파다로 번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예루살렘 美대사관’ 정면충돌
유대인 4만5000명 시가 행진… 팔레스타인 주민 상점가 한때 점거
“아랍인들 예루살렘서 떠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 중동의 화약고에 불씨를 던진 것일까.

미국이 이스라엘의 70주년 건국기념일인 14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던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개관한 조치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해묵은 갈등을 폭발시킬지에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로 불리는 예루살렘은 14일부터 팽팽한 전운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날까지 예루살렘은 유대인 축제의 장이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예루살렘에는 4만5000명의 시위대가 시청 앞을 시작으로 유대교 최고 성지인 ‘통곡의 벽’ 방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행진에 참가한 유대인 3분의 2 이상은 10대였다. 이스라엘 전역의 유대인 전통 교육기관 ‘예시바’는 학생들을 예루살렘의 날 행사에 참가시키기 위해 이날 휴교했다. 학생들을 태운 버스 수백 대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들은 예루살렘 올드시티(옛 시가지)의 팔레스타인 지구로 이어지는 다마스쿠스 게이트를 통과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운영하는 상점가 앞을 한동안 점거한 채 히브리어로 노래를 불렀다.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들은 유대인들이 행진하는 동안 바리케이드를 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예루살렘의 날 성조기 두르고… 13일 한 이스라엘 남성이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팔레스타인 지구로 이어지는
 다마스쿠스 게이트 앞에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서 있다. 이날은 ‘예루살렘의 날’로 이스라엘이 1967년 아랍 국가들과의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동(東)예루살렘을 강제 병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루살렘=AFP 뉴시스
예루살렘의 날 성조기 두르고… 13일 한 이스라엘 남성이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팔레스타인 지구로 이어지는 다마스쿠스 게이트 앞에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서 있다. 이날은 ‘예루살렘의 날’로 이스라엘이 1967년 아랍 국가들과의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동(東)예루살렘을 강제 병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루살렘=AFP 뉴시스
팔레스타인 지구의 상인 마르완 기넴 씨는 “유대인들이 ‘올드시티에 아랍인들이 없어야 한다’고 외치며 행진하는데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들은 유대인 보호를 위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4일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예루살렘 미국대사관 개관식이 열렸다. 대사관 건물에 걸린 푸른 가리개가 내려진 뒤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이스라엘은 항상 끝이 없는 자유의 힘을 보여준다. 이 땅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유대인, 이슬람인, 기독교인 등 믿음을 지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숭배하면서 함께하는 곳이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예루살렘의 미 대사관 개관식에 앞서 녹화된 영상에서 “오늘 우리는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의 미 대사관을 개관한다. 축하한다. 여기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대인들이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는 동안 가자지구를 비롯해 라말라 등 요르단강 서안 주요 도시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예루살렘 검문소를 향해 반(反)이스라엘 행진을 시작했다. 이에 이스라엘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면서 4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금식 성월(聖月)인 라마단 기간(5월 15일∼6월 14일)을 앞두고 벌어진 것이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유혈 사태가 ‘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과 싸워야 하는 애매한 형국이어서 투쟁 동력이 약화됐으며,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오랜 내분으로 조직적 항쟁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2010년 12월 한 청년의 분신이 중동에 ‘아랍의 봄’ 혁명을 일으켰듯이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응축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경우 저항의 강도가 예전과 크게 달라져 3차 인티파다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주성하 기자
#예루살렘#팔레스타인#유혈사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