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의회 ‘예결특위 뒤집기’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민주당 의원 수정 발의 일상화… 본회의서 수적 우위 내세워 번복
예결특위 무용론과 불신 깊어져

공주시 월송동주민자치위원회가 시의회의 예산 삭감에 반발해 올 1월 관내에 내건 현수막이 가로로 길게 찢어져 있다. 경찰은 최근 이 현수막을 훼손한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주시주민자치협의회 제공
공주시 월송동주민자치위원회가 시의회의 예산 삭감에 반발해 올 1월 관내에 내건 현수막이 가로로 길게 찢어져 있다. 경찰은 최근 이 현수막을 훼손한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주시주민자치협의회 제공
“존경하는 동료의원 여러분! 보고드린 사항은 예결특위에서 충분한 심사와 토론을 거쳐 의결됐습니다. 심사한 대로 가결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9일 오전 11시 충남 공주시의회 본회의장. 더불어민주당 배찬식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올해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결과 6건에 걸쳐 91억8000만 원을 삭감했다”고 예결특위 결과를 설명한 뒤 그대로 본회의에서 원안 통과해줄 것을 당부했다.

○ 일상이 된 ‘예산 뒤집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같은 당 김동일 의원이 “선심성, 소모성, 전시성의 과도한 예산 편성”이라며 예산안 수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방금 전 원안 통과를 당부했던 배 의원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 3명이 즉각 손을 들어 수정발의에 찬성했다. 이어진 본회의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예결특위 결론을 뒤집어 원하는 대로 25억7000만 원을 추가로 삭감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무소속인 윤홍중 시의회의장의 협조를 얻어 의사를 관철했다. 공주시의원 11명의 정당 분포는 민주당 5명, 자유한국당 4명, 바른미래당 1명, 무소속 1명이다. 의장이 참여할 수 없는 예결특위는 민주당이 5명, 자유한국당 및 바른미래당이 5명으로 동수를 이룬다. 견해가 엇갈리는 사안을 어느 한쪽 의지대로 결론 내기 어려운 구도다. 하지만 시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본회의로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윤 의장이 항상 민주당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윤 의장은 후반기 의장이 될 때 민주당 의원들의 지원을 받았다

이런 예결특위 결과 ‘뒤집기’는 공주시의회에서 이제 일상이 됐다. 시의회에 따르면 2016년 7월 추경부터 이번까지 모두 4번에 걸쳐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9일 본회의에서 판박이 결과가 나오자 한국당 한상규 의원은 “우리가 정말 막판까지 이런 모습을 보여야겠느냐”며 회의장에서 나갔다. 공주시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민주당 의원들이) 수적 우위를 내세워 예결특위 결과를 본회의에서 번복하는 선례를 또 답습했다. 예결특위 무용론이 깊어지고 의회 심의결과에 대한 불신도 높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심의결과 추경예산 1305억 원 가운데 예결특위 91억8000만 원을 포함해 약 9%인 117억5000만 원이 삭감됐다. 옛 공주의료원 리모델링, 얼음축제 도입, 회전교차로 설치, 역사영상관 공원 개선 등을 위한 예산들이다. 4∼6일 사흘간 예결특위에서 예산의 당위성을 의원들에게 설명해온 해당 부서 공무원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공주시 기획부서 관계자는 “원도심 활성화, 시민 평생학습, 4계절 축제 완성, 시민 안전 등을 위해 긴요한 사업들이 줄줄이 차질을 빚게 됐다”고 걱정했다. 이 관계자는 “의원들이 제시한 삭감 이유가 근거가 부족하고 불명확한 데다 대안 제시도 없어 공감하기 어렵다. 일부 예산은 도비 보조사업이어서 예산에 우선 반영해야 하는데 삭감됐다”며 난감해했다.

○ 의원들이 주민 고소해 논란 빚기도

수정발의 다음 날 도의원 출마를 위해 사퇴한 김 전 의원은 “예결특위 결과를 자주 뒤집는 것이 위법은 아니지만 모양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의회의 기능은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인데 한국당 의원들이 예산 감시에 미흡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가 회전교차로를 추진하고 있으나 설치요건에 맞지 않고, 새 축제를 도입하려고 하나 이미 크고 작은 축제가 넘쳐나는 실정”이라며 “불합리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업의 예산을 삭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당 박기영 의원은 “의장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참여한 예결특위의 결과는 시민 의사로 존중받아야 하는데 의장의 한 표를 이끌어내 결과를 뒤집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며 “한국당 소속 현 시장의 시정에 발목을 잡아 민주당 출신 시장을 만들기 위한 정략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번에 예산이 삭감된 사업들은 점차 공동화를 더해가는 원도심을 살리고 관광 활성화와 평생학습, 시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예산심의에서 지난해 12월 본예산 심의 때 전액 삭감했던 주민자치 및 재향군인회 예산을 복원했다. 박미옥 공주시주민자치협의회장은 “별다른 상황 변화가 없는데 완전 삭감했던 주민자치 예산을 복원한 것은 당초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당시 나에게 제기한 고소는 여전히 취하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민주당 의원 5명과 윤 의장은 1월 박 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박 회장이 예산삭감에 반발해 협의회 이름으로 내건 ‘주민자치 예산 전액 삭감, 0원. 주민자치 무시하는 시의원 전원 사퇴하라’는 현수막을 문제 삼았다. 당시 현수막 일부는 내건 지 하루 만에 누군가에 의해 찢겨져 또 다른 논란으로 비화됐다. 경찰은 현재 현수막을 훼손한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공주#예결특위#예산 삭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