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2관왕 뒤 빙속 전환… 14일 마지막 출전 1000m 16위
평소 패션감각 뛰어나 화제, 운동 틈틈이 학원 다니며 공부 “하고픈 일 하며 즐겁게 살겠다”
1분16초11, 16위. 쇼트트랙 2관왕에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한국 겨울올림픽 사상 최초로 두 종목 올림픽 대표로 이름을 남긴 스피드스케이팅 박승희(26)의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 마지막 기록이다. 14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레이스를 마친 그는 환호하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박승희는 경기가 끝난 뒤 울먹이며 믹스트존에 나타난 “마지막 올림픽이다 보니 좀 울컥 했던 거 같다. 쇼트트랙 했을 때 메달 유망주라서 응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건 없이 응원해준 관중에게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쇼트트랙을 10년 넘게 타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뒤 준비기간이 짧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스피드스케이팅도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 출전인 박승희가 메달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값진 도전이고 성적이었다.
“평창 올림픽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던 그의 올림픽 후 꿈은 뭘까. 현역 유지도 지도자도 아닌 ‘패션디자이너’. 또 한 번의 전업이다. 겨울올림픽에서 총 5개의 메달(금 2, 동 3)을 딴 그녀가 디자인한 옷과 신발을 머지않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4년 전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고 평범한 생활을 꿈꿨던 박승희다. 그의 스케이트화 끈을 다시 묶게 한 원동력은 평창 올림픽이다. 이번 올림픽에 박승희는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섰다. 메달에 미련을 두지 않고 도전, 즐거움에 의의를 둔 까닭이다.
학창시절 피겨스케이팅 만화(‘사랑의 아랑훼스’)를 보고 자녀들을 스케이팅 선수로 키우려 한 어머니 이옥경 씨(52)의 손에 이끌려 스케이트 선수가 된 박승희의 초반 주 종목은 스피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전업했는데 이유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따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그 결정처럼 박승희가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여전히 즐거움이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것 또한 즐겁게 살기 위해서다.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도 열심인 박승희는 SNS에 남다른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을 올리기도 한다. 훈련이 없을 때는 동대문 등에서 열린 패션위크 행사에도 참여했다. 이 씨는 “가끔 길에서 (모델들만 입을) 독특한 옷을 보고 ‘저걸 누가 살까’ 생각하는데 집에 오면 승희가 그걸 입고 있더라”라고 말했다. 박승희가 선수가 아닐 때 유일하게 망가진 순간은 군복을 입고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른 모습으로 한 예능프로에 출연했을 때다. 경기 화성시에 있는 박승희의 집에는 ‘박승희 패션’의 방점을 찍어줄 형형색색의 구두가 아크릴로 된 전용신발장에 빽빽이 놓여 있었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박승희는 남몰래 노력도 했다. 디자인을 교육하는 학원에 등록해 전문 공부를 하기도 한 것이다. 올림픽을 준비하며 디자인 학원 수강이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어놓은 양’ 잠시 흐지부지됐지만 평창 올림픽 이후 디자인 공부에 매진할 예정이다.
경기에 지고 온 날도 다른 이야기를 하다 금세 웃음꽃을 피울 정도로 긍정적이라는 가족도 앞으로 펼쳐질 박승희의 세 번째 도전을 응원하고 있다. 이 씨는 “선수가 아닌 ‘일반인’ 박승희로 살아야 할 시간도 꽤 될 거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도 꽤 많다. 독특한 옷도 제법 어울리는 승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며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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