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희의 끝없는 도전 “내일은 패션디자이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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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2관왕 뒤 빙속 전환… 14일 마지막 출전 1000m 16위
평소 패션감각 뛰어나 화제, 운동 틈틈이 학원 다니며 공부 “하고픈 일 하며 즐겁게 살겠다”

한국 빙상 최초로 종목을 바꿔 올림픽에 출전한 박승희가 1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에서 질주하고 있다(왼쪽 사진). 박승희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에 이어 올림픽 후에는 패션디자이너를 꿈꾸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승희가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신의 모습. 빙판 위 트리코(경기복)를 입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국 빙상 최초로 종목을 바꿔 올림픽에 출전한 박승희가 1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에서 질주하고 있다(왼쪽 사진). 박승희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에 이어 올림픽 후에는 패션디자이너를 꿈꾸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승희가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신의 모습. 빙판 위 트리코(경기복)를 입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강릉=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분16초11, 16위. 쇼트트랙 2관왕에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한국 겨울올림픽 사상 최초로 두 종목 올림픽 대표로 이름을 남긴 스피드스케이팅 박승희(26)의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 마지막 기록이다. 14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레이스를 마친 그는 환호하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박승희는 경기가 끝난 뒤 울먹이며 믹스트존에 나타난 “마지막 올림픽이다 보니 좀 울컥 했던 거 같다. 쇼트트랙 했을 때 메달 유망주라서 응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건 없이 응원해준 관중에게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쇼트트랙을 10년 넘게 타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뒤 준비기간이 짧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스피드스케이팅도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 출전인 박승희가 메달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값진 도전이고 성적이었다.

“평창 올림픽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던 그의 올림픽 후 꿈은 뭘까. 현역 유지도 지도자도 아닌 ‘패션디자이너’. 또 한 번의 전업이다. 겨울올림픽에서 총 5개의 메달(금 2, 동 3)을 딴 그녀가 디자인한 옷과 신발을 머지않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4년 전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고 평범한 생활을 꿈꿨던 박승희다. 그의 스케이트화 끈을 다시 묶게 한 원동력은 평창 올림픽이다. 이번 올림픽에 박승희는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섰다. 메달에 미련을 두지 않고 도전, 즐거움에 의의를 둔 까닭이다.

학창시절 피겨스케이팅 만화(‘사랑의 아랑훼스’)를 보고 자녀들을 스케이팅 선수로 키우려 한 어머니 이옥경 씨(52)의 손에 이끌려 스케이트 선수가 된 박승희의 초반 주 종목은 스피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전업했는데 이유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따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그 결정처럼 박승희가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여전히 즐거움이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것 또한 즐겁게 살기 위해서다.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도 열심인 박승희는 SNS에 남다른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을 올리기도 한다. 훈련이 없을 때는 동대문 등에서 열린 패션위크 행사에도 참여했다. 이 씨는 “가끔 길에서 (모델들만 입을) 독특한 옷을 보고 ‘저걸 누가 살까’ 생각하는데 집에 오면 승희가 그걸 입고 있더라”라고 말했다. 박승희가 선수가 아닐 때 유일하게 망가진 순간은 군복을 입고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른 모습으로 한 예능프로에 출연했을 때다. 경기 화성시에 있는 박승희의 집에는 ‘박승희 패션’의 방점을 찍어줄 형형색색의 구두가 아크릴로 된 전용신발장에 빽빽이 놓여 있었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박승희는 남몰래 노력도 했다. 디자인을 교육하는 학원에 등록해 전문 공부를 하기도 한 것이다. 올림픽을 준비하며 디자인 학원 수강이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어놓은 양’ 잠시 흐지부지됐지만 평창 올림픽 이후 디자인 공부에 매진할 예정이다.

경기에 지고 온 날도 다른 이야기를 하다 금세 웃음꽃을 피울 정도로 긍정적이라는 가족도 앞으로 펼쳐질 박승희의 세 번째 도전을 응원하고 있다. 이 씨는 “선수가 아닌 ‘일반인’ 박승희로 살아야 할 시간도 꽤 될 거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도 꽤 많다. 독특한 옷도 제법 어울리는 승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며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릉=김배중 wanted@donga.com·강홍구 기자
#박승희#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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