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맞은’ 평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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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에 알파인 스키 이틀째 못 열려… 남자 활강-여자 대회전 잇단 연기
일정 촘촘해지면서 메달 판도 영향… 강호들도 ‘선택과 집중’ 고민할 듯

‘황태덕장’의 거센 바람이 평창의 짓궂은 훼방꾼으로 떠올랐다. 11일 알파인스키 남자 활강에 이어 12일 여자 대회전 경기가 강풍으로 연기됐다. 설상 경기가 열리는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일대는 한국의 대표적 황태덕장으로 겨우내 바람이 거센 곳이다. 올림픽 출전 선수들 사이에선 “꺾어야 할 상대가 ‘경쟁 선수’도 ‘나 자신’도 아닌 ‘바람’이다”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12일 용평 알파인경기장에선 오전 10시 15분부터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새벽부터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국제스키연맹(FIS)은 경기 3시간 전인 오전 8시경 일정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시각 경기장 내 선수 출발점의 기온은 영하 17도, 풍속은 초속 5m였다. 체감온도는 영하 25도까지 곤두박질쳤다. 전날인 11일에도 강풍으로 알파인스키 남자 활강이 연기됐다.

이틀 연속 파행 운영되면서 “올림픽 기간 내에 경기를 다 못 치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성백유 조직위원회 대변인은 12일 “예비일이 있기 때문에 경기 일정에는 영향이 없다”면서도 “바람에 관한 것은 일기예보에서 사흘 치밖에 측정이 안 돼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기상 때문에 일정이 변경됐을 때 관객들은 해당 날짜에 열리는 경기를 보거나 입장권 웹사이트(tickets.PyeongChang2018.com) 등을 통해 환불 받을 수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림픽 데뷔를 앞둔 선수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장 꼭대기 선수 대기소에서 출발을 기다리던 미알리티아나 클레어(17)는 경기 연기 소식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울상 짓는 사진을 올렸다. 그는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겨울올림픽 무대를 밟을 예정이었다. 북한의 김련향(26)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스타 선수’들도 바람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경기 일정이 바뀌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치 올림픽 활강 동메달리스트인 스위스의 라라 구트(27)는 이날 SNS에 ‘대자연이 오늘은 아니라고 한다. 침대로 돌아가 좀 더 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올렸다. 전날에는 ‘마치 영하 1000도쯤 되는 것 같다’며 평창 날씨에 혀를 내둘렀다.

경기 연기가 잦아지면 일정 변경에 따라 일부 선수들이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경기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경기 일정이 촘촘해지면 잘하는 종목에 ‘다걸기(올인)’ 하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바람을 이겨내고 메달을 목에 건 선수도 나왔다. 11일 열렸던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경기에서 미국의 레드먼드 제라드(18)는 1, 2차 시기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11명 중에 10등을 기록한 뒤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완벽한 기술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는 “두 번의 레이스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마지막에 바람이 좀 잠잠했다”며 바람을 주요 변수 중 하나로 꼽았다.

평창=김성모 기자 mo@donga.com
#황태덕장#평창#알파인스키#평창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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