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A서 울린 총성… 총상 입은 北병사, 南으로 넘어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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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 군복 차림… 나이 20대 추정
우리軍, 포복으로 접근 北병사 구출… 헬기 후송, 이국종 교수가 응급수술
북한군 판문점 경비병 가능성 높아… JSA 귀순은 10년만에 처음
일각 “발견 늦어… 경계태세 허술”

북한군 하전사(병사) 1명이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측으로 귀순했다. 이 병사는 귀순 과정에서 북한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아 4, 5군데나 총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군의 JSA 귀순은 2007년 9월 이후 10년 만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우리 군은 JSA 북측 지역에서 ‘타타탕’ 하는 총성이 들린 직후인 오후 3시 31분경 군사분계선 남쪽 50m 지점에 쓰러져 있는 북한군 병사를 발견했다. 이 병사는 비무장 상태의 군복 차림으로 피를 흘린 채 엎드려 있었다. 곧이어 3시 56분경 아군 병력들은 북한군의 추가 사격에 대비해 포복 자세로 현장에 접근해 북한군 병사를 건물 뒤편으로 옮겨 신병을 확보했다.

이 병사는 유엔군사령부 소속 미군 헬기에 실려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오후 5시 20분경부터 응급 수술을 받았다. 2011년 이른바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해적에게 총격을 당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수술을 맡았다.

병원 관계자는 “어깨와 등 외에도 가슴과 복부, 다리에도 총상이 있다”며 “수술을 일단 끝냈지만 (과다 출혈과 장기손상 등으로) 상태는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꽂고 집중치료를 받고 있으며, 추가 수술에 대비해 개복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北서 돌연 총성… 귀순병사, MDL 남쪽 50m 지점에 쓰러져 ▼

문틈으로 보이는 北병사 다리 14일 0시경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문틈으로 전날 귀순한 북한군
 하전사의 한쪽 발과 다리 일부가 보인다. 이 병사는 7군데 이상의 내장 파열이 발견돼 이 시간까지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링거에 적인 이름은 ‘무명남’. 수원=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문틈으로 보이는 北병사 다리 14일 0시경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문틈으로 전날 귀순한 북한군 하전사의 한쪽 발과 다리 일부가 보인다. 이 병사는 7군데 이상의 내장 파열이 발견돼 이 시간까지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링거에 적인 이름은 ‘무명남’. 수원=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 병사는 JSA 북측 지역 경계초소에서 남측의 자유의 집 방향으로 달려와 귀순하다 북한군의 총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는 이번 사건의 관련 조사에 공식 착수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병사가 쓰러진 지점은 인근에 건물 등 몸을 숨길 곳이 없어 지척에 있는 북한군에 움직임이 그대로 노출되는 곳이었다. 이 때문에 혹시 모를 북한군 사격에 대비해 철저한 경계·대응태세를 유지한 채 북한군 병사에게 접근하느라 20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다행히 이 과정에서 북한군의 도발은 없었다고 군은 전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쏜 총탄이 남측으로 날아오지 않았다”며 “북한군 병사를 안전지대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북한 측의 사격 등 특이 동향이 없어 양측 간 교전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JSA 북측 지역의 북한군 4, 5명이 망원경과 감시 장비로 아군의 귀순 병사 구조현장을 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총상을 입고 군사분계선 남쪽 50m나 내려온 귀순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감시태세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JSA의 남북 초소에는 수십 대의 감시카메라와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1년 365일 24시간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 군 당국자는 “귀순 상황을 계속 지켜봤고 자칫 교전이 벌어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최대한 북한군 동향을 주시하며 포복 자세로 접근해 신병을 확보하는 등 상황 조치에 완벽을 기했다”고 말했다.

군은 귀순 병사의 구체적인 계급과 신원은 밝히지 않았다. 해당 병사의 상태가 위중해 대화가 어려운 만큼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 등이 참여해 구체적인 귀순 경로 및 경위, 신원 등을 밝히는 중앙 합동 신문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볼 때 판문점 JSA 경비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군은 판문점 JSA에 출신 성분이 좋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일급 병사’를 특별 선발해 배치하고 있다.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남한으로 갈 수 있는 JSA 특유의 구조상 당 또는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낮은 병사들을 배치했다가는 연쇄 귀순으로 이어지고 내부 동요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에 귀순한 병사가 JSA 경비병으로 확인될 경우 관련 정보가 북한군 및 일반 주민들에게 퍼지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군 내부에 미칠 파장이 크고, 김정은 체제의 균열 조짐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JSA 지역으로 귀순한 첫 사례는 1998년 2월 변용관 상위(중위와 대위 사이·판문점 경비장교)가 있다. 군은 2007년 9월에도 북한군 병사 1명이 JSA로 귀순했다고 밝혔지만 당시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귀순은 올해 6월 23일 강원도 최전방 중부전선에서 병사 1명이 귀순한 이후 5개월 만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김윤종 기자
#북한군#귀순#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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