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지하철 무임승차 죄송”… 100만원 보낸 장애노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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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화상, 장애진단 받아 무임… 처음엔 좋았지만 갈수록 마음 불편”
서울교통공사로 편지와 함께 송금

서울교통공사 제공
서울교통공사 제공
‘제가 무임승차한 것에는 많이 미치지 못하겠지만, 실제 나이 73세를 생각하시어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교통공사 사장 비서실로 편지 한 통이 왔다. 봉투 속에는 ‘서울 지하철 사장님께’라는 제목이 달린 A4 용지 1장으로 된 편지와 5만 원권 20장, 즉 100만 원이 들어있었다(사진). 이를 가리키듯 편지는 ‘일금 일백만원을 송금하여 드립니다’라고 시작했다.

자신의 나이를 73세라고만 밝히며 편지를 보낸 이는 ‘다섯 살 이전에 입은 화상으로 왼손가락 전체가 장애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진단을 받으려고 의사를 만났더니 나를 동정해서 장애진단을 해주었고…’라며 정성 들인 필체로 자신을 소개해 내려갔다.

그는 100만 원을 동봉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부터 지하철 무임승차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오랜 생각 후에 사죄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임승차한 것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화상을 입었지만 나중에서야 장애 판정을 받으려고 의사를 찾았다는 얘기에서는 부끄러움이 살짝 배어나왔다. 이후 지하철을 합법적으로 돈 내지 않고도 탈 수 있게 됐고, 또 그렇게 타고 다녔지만 못내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100만 원이면 지하철 기본요금(성인 지하철카드 1250원) 기준으로 800번 탑승할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인은 등급에 상관없이 대중교통 무임승차가 가능하다. 1∼3등급은 같이 간 1인까지 돈 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더욱이 편지를 보낸 이가 자신의 주장대로 73세라면 65세 이상부터 적용되는 노인 무임승차 혜택도 받는다.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18일 “사죄의 마음으로 보낸 이분의 편지가 각박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무임승차#지하철#장애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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