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보복 손실 1조원 추산… 롯데, 끝내 무너진 10년 공든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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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베이징(北京) 왕징(望京) 지역의 롯데마트.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사는 지역인데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된서리를 피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매장 전역에서 손님이 10명을 넘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매일 신선한 제품이 공급돼야 하는 육류와 생선 매장은 아예 불을 꺼놓고 판매를 중단했다.

롯데마트는 결국 사드 보복으로 인한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백기 투항했다. 최근 112개 점포의 실사까지 마치고 여러 기업과 매각 협상을 해왔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10월 초 유력한 매수 기업과 철수 방안 등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4월만 해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낙관론을 폈다. 그는 “두 달 정도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롯데는 중국에서 2만5000명의 현지인을 고용했고 중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사업을 철수할 생각이 없다”고도 못 박았다.

당시 롯데 내부에서는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중국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신 회장도 “중국 철수라는 단어가 외부에서 언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내부 단속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5월 중순 중국 롯데마트 점포 3곳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이 해제됐다가 4일 만에 번복된 일이 있었다. 롯데는 이때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기조에 변함이 없음을 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 리스크가 높아지는데도 중국 정부의 사드에 대한 입장은 강경했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최근 사드 배치가 완료되면서 내부 분위기가 매각 쪽으로 확 돌아섰다. 매각 외에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롯데마트의 2분기(4∼6월) 중국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4.9% 줄었다. 점포가 문을 닫아도 임차료뿐 아니라 일손을 놓고 있는 1만여 명의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의 70%를 지불하고 있다. 롯데는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2월 말부터 현재까지 사드 보복으로 5000억 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금액은 연말이면 1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는 이번 철수 계획마저 중국 정부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매각 협상이 잘돼도 중국 정부가 이를 승인할지 등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외 다른 계열사의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에는 유통(롯데백화점, 롯데마트), 식품(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관광 및 서비스(롯데호텔, 롯데면세점, 롯데시네마 등), 유화 및 제조(롯데케미칼 등), 금융(롯데캐피탈) 등 22개 계열사가 진출해 있다.

특히 3조 원을 투자하는 선양(瀋陽) 롯데월드 프로젝트는 롯데그룹이 중국에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밝힌 신 회장의 야심작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공사중지 처분을 받은 이후 작업이 멈춰 있다. 청두(成都)에 1조 원을 투입한 복합단지 프로그램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아파트 1400여 채 등 주거시설 부문은 분양이 완료돼 이달 말까지 입주가 끝나지만 옆에 짓기로 한 백화점 등 상업시설은 허가가 나지 않아 착공을 못하고 있다.

유통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마트도 중국에서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롯데도 더 빨리 마트 사업을 정리했어야 하지만 늦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각각 1997년, 2008년 중국에 진출했다. 이마트는 1997년 상하이(上海) 1호점을 시작으로 2010년 27개까지 점포수를 확장했지만 만성적자에 결국 2011년부터 사업 정리 수순을 밟았다. 현재 6개 점포가 남아 있고 이 중 5곳은 태국 CP그룹과 매각협상 중이다.

롯데마트는 2015년 산둥(山東) 지역 점포 5곳 폐점 등 점포 구조조정, 현지인화를 통해 실적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개선의 기미가 보였던 중국 사업이 사드 보복이라는 외부적 충격으로 진출 9년 만에 멈추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의 중국 출구전략은 이마트보다 비교적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롯데마트가 매각으로 수익을 내서 현금을 들고 나오는 상황이 아니어서 중국 정부가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히려 롯데마트의 중국 철수 추진으로 10월 지주사 전환을 위해 분할합병을 앞둔 롯데쇼핑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도 있다. 롯데쇼핑의 14일 종가는 22만 원으로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금액인 주식매수청구가(23만1404원)보다 낮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점진적으로 철수한 이마트와 달리 롯데마트는 많은 점포를 일괄 매각하려는 것이어서 매수자 찾기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롯데마트 영업정지를 대체할 새로운 보복 소재를 찾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괘씸죄에 걸리면 매각 자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강승현 기자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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