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에서]민원인 폭언 오죽했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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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
송파구 사회복지과 음성벨 설치
직원들 “쓸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 지금 민원인과 대화하는 공무원도 민원인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중략) 아울러 상담공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시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대화내용은 민원인과 직원의 인권보호를 위해 녹음되니 언성을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흥겨운 음악이 깔리며 친절한 목소리로 녹음된 안내 음성이 나옵니다. 약 50초 동안의 이 ‘반(半) 요청 반 경고’는 송파구 사회복지과 상담실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민원인과 상담을 하는 공무원이 벽에 달린 ‘예의지킴이 벨’을 누르면 스피커에서 나옵니다. 이 벨은 도대체 왜 설치된 것일까요.

송파구 A 주무관은 1월 민원인에게 기초생활보장급여가 중단됐다고 알렸더니 “네 집을 알고 있으니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을 들었습니다. 민원인은 구청에 수시로 찾아와 A 주무관에게 “너 때문에 자살할 거야”라며 폭언을 했습니다. B 주무관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칼을 들고 구청을 찾아오거나 벽에 머리를 ‘쿵쿵’ 찧는 민원인에게 시달리다가 마음의 병이 난 것입니다.

이런 악성 민원인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찾아와 폭력적 언행을 가하기 일쑤입니다. “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며 목청 높이는 민원인들로 인해 직원들이 정신적 충격을 받는 일이 이어지자 송파구는 지난달 28일 예의지킴이 벨을 설치했습니다. 먼저 상냥하게 인사를 해서 ‘흥분한 민원인에게도 시간을 줘서 숨고르기를 할 수 있도록’ 한 뒤, ‘더 계속하면 처벌 받을 수도 있다’고 설득한다는 전략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민원인들이 1분 가까이 가만히 앉아 자동안내 음성을 들으며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오죽하면 ‘녹음된 도움’이라도 받고 싶어 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서로 조금이나마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복지과 한 직원은 “벨을 도입하고 다행히 아직 써볼 일이 없어서 실제 효과는 모르겠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이며 웃었습니다. “웬만하면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시청#민원인#폭언#사회복지과#음성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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