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권교체 따른 당연한 수순”… “불명예 강제퇴진 악순환 반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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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장 물갈이 본격화

공공기관 A공단의 비서실장 B 씨는 요즘 내부 직원들에게서 “혹시 이사장님이 물러난다는 언질을 하셨느냐”는 질문을 매일 듣는다. 전임 정부에서 임명돼 언론 등에서 ‘곧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직원들이 기관장의 용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받은 일부 기관장이 잇달아 사퇴를 요구받거나 실제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공공기관장 인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권 교체에 따른 공공기관장 인사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관장에게 불명예 낙인을 찍으며 쫓아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국무조정실이 최근 주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기관장 평판조회’를 실시한 사실이 확인돼 논란에 휩싸였다.

○ 산업부, 채용비리 지적받은 기관장 사직 권고

산업통상자원부는 감사원으로부터 채용 비리를 지적받은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백창현 대한석탄공사 사장, 정용빈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 등 3명의 산하 공공기관장에게 최근 사직을 권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확정된 만큼 해당 기관장에 대한 후속 절차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당 기관장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김정래 사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감사원 감사 결과를 거론하며 비리를 이유로 사임을 요구하면 응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반면 정용빈 원장은 이날 산업부에 정식으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백창현 사장도 사직 권고를 수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거취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감사원 측은 이에 대해 “‘채용 감사’ 등은 모두 지난해 말부터 계획된 것으로 기관장 교체를 염두에 두고 진행한 ‘기획 감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국조실은 최근 일부 기관 직원들에게 ‘기관장의 평소 업무 태도는 어떤지’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평판조회에 참여한 한 공공기관 직원은 “평판조회 후 조만간 사장이 어떻게 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조실 관계자는 “정례적으로 해왔던 업무”라고 해명했다.

○ 본격화되는 공공기관장 물갈이

공공기관장 물갈이는 이미 본격화됐다. 전임 정부와 정치적으로 긴밀한 인사들 중 상당수가 이미 자진사퇴를 했거나 검찰 수사 등을 받으면서 불명예 퇴진을 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는 공기업 16곳, 준정부기관 15곳, 기타공공기관 10곳 등 총 41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이미 공석이거나 올해 안으로 임기가 끝나는 기관장을 비롯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을 정리하기 위한 수순이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산하 14개 공공기관 기관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부 기관장은 1년 넘게 임기가 남았지만 정치적 상황을 감안할 때 잔여 임기와 상관없이 퇴진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계에서는 임기가 2년 남아있던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10일자로 사표가 수리됐고, 2015년 9월 취임해 임기 1년이 남았던 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도 지난달 사임했다. 임기가 내년 4월까지였던 김영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오류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미루다가 정권 교체 이후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장은 아니지만 배석규 한국케이블방송TV협회 회장도 11일 임기를 5개월가량 남기고 사의를 표명했다. KBS 기자 출신인 배 회장은 2009년부터 6년간 YTN 사장을 지냈다.

물갈이가 진행되면서 공공기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특히 올 7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이 ‘공공기관 적폐 기관장’으로 지목한 10인의 소속 기관 등 정치적 주목도가 높은 기관들의 불안감이 높다. 양대 노총이 사퇴를 촉구한 기관장의 소속 기관 관계자는 “누가 내려와도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나설 텐데 자칫 직원들이 개혁 대상으로 몰리진 않을지 염려된다”고 말했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300개가 넘는 공공기관장 자리의 직무 분석을 통해 전문성이 없어도 되는 자리는 아예 임기를 없애고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종=박희창 기자ramblas@donga.com·편집국 종합
#공공기관장#물갈이#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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