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가장 아름다운 요리의 본질은 ‘단순함’… 식재료 깊게 이해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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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마드리드 퓨전 마닐라…세계 미식계서 영향 끼치는…미쉐린 스타 셰프 등 20명 참석…직접 키운 소-채소로 요리 선보여…식품박람회서 필리핀 농산물 경험…“필리핀 음식문화는 동서양의 혼재”

‘어떻게 먹고사는 것이 좋은가’라는 화두가 세계적으로 공통적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그런 이유로 ‘미식’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세계 요식업계 관계자가 주목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2002년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마드리드 퓨전(Madrid Fusion)’은 그런 행사 중 하나다. 스페인의 내로라하는 셰프는 물론 세계 도처의 요리사, 식품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조리법과 요리 철학, 트렌드를 공유한다.

아시아에서도 자국의 미식문화를 세계무대에 올리고 미식을 통해 문화적, 경제적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곳이 필리핀 정부다. 필리핀은 ‘마드리드 퓨전’과 손잡고 2015년부터 ‘마드리드 퓨전 마닐라’를 개최하고 있다.

줄리앙 로여 셰프.
줄리앙 로여 셰프.

스페인과 필리핀의 만남은, 양국의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면 그리 의아하지 않다. 1571년부터 1898년까지 스페인의 식민지로서 멕시코 총독의 간접 통치를 받았던 필리핀은 당시 남미 제국과 아시아 제국의 물자를 교환하는 장소로 활용됐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지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필리핀 음식문화는 여느 동남아시아 국가와도 차별화되는 복합적인 조리법과 맛의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점령을 거쳐 1945년 독립을 이루기까지 유럽, 아시아, 남미 음식과 강렬한 융합기간을 거쳤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퓨전 마닐라는 이러한 필리핀의 음식 문화를 알리고 예전의 갈리온(마닐라와 멕시코를 오가던 스페인의 범선) 무역 시절처럼 동서양 요리 문화교역의 중심지로서 부활을 꿈꾸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올해 4월 6일부터 8일까지 마닐라 SMX 컨벤션센터에서는 제3회 마드리드 퓨전 마닐라가 열렸다. 올해 주제는 ‘지속 가능한 미식 세계를 향해(Toward a Sustainable Gastronomic Planet)’였다. 감각의 즐거움보다는 가치의 올바름에 대한 고민으로 접어든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고급 조리기술을 기반으로 한 파인 다이닝을 뜻하는 ‘가스트로노미’ 문화에서, 지속 가능한 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필리핀 정부가 마드리드 퓨전 마닐라를 개최하던 첫해에 내건 주제였던 ‘필리핀과 스페인: 300년의 미식 역사(A 300-year Gastronomic Journey)’ 또는 지난해의 주제 ‘마닐라 갈리온으로: 동서양 만나다(East Meets West)’와 비교하면 자국의 미식 홍보로 시작했던 무대가 세계 공동의 가치를 고민하는 무대로 성숙되고 있었다.
망구스 에크 셰프의 요리. 그을린 잎, 하얀 이끼 그리고 건조한 북극곤들매기가 들어갔다.
망구스 에크 셰프의 요리. 그을린 잎, 하얀 이끼 그리고 건조한 북극곤들매기가 들어갔다.

행사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됐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셰프들이 주어진 주제에 맞는 의견과 메뉴를 교환하는 ‘국제 미식 회의(International Gastronomy Congress)’와 필리핀의 다양한 농산물과 식품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식품 박람회’, 관광부와 농림부의 주도로 필리핀 토착 품종의 쌀, 옥수수 등 식재료와 조리법이 반영된 로컬요리를 선보인 ‘지역의 점심(Regional Lunch)’이었다.

박람회와 지역의 점심 행사에서는 일일이 다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필리핀의 ‘맛의 향연’이 펼쳐졌다. 행사장에서 만난 필리핀의 스타 셰프인 마가리타 포레는 필리핀 미식의 특성으로 ‘복합성’을 꼽았다. 그는 지난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베스트 여자 셰프상을 수상했었다.

게르트 드 만젤리르 셰프의 요리인 로브스터와 패션 푸르트.
게르트 드 만젤리르 셰프의 요리인 로브스터와 패션 푸르트.

“필리핀의 음식문화는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아시아에서 태국, 일본, 한국, 중국 요리가 널리 알려지고 있잖아요. 반면 필리핀 음식문화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죠. 우리만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최근에 명확하게 깨달았어요. ‘동서양의 혼재’가 바로 우리이고 바로 우리를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점을 말이죠.”

필리핀의 전통과 모던, 동양과 서양의 만남, 생소한 식재료, 이국적인 맛을 경험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국제 미식 회의에 있었다.
세계 미식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셰프들이 참석해 주제에 따른 자신들의 실전적 경험화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올해는 조르디 로카, 게르트 드 만젤리르, 페드로 수비하나, 호세안 알리야, 망누스 에크 등 미쉐린 스타 셰프를 비롯해 첼레 곤잘레스, 줄리엔 로여, 레이 아드리안시아와 엘케 플라메이어 등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주목받은 셰프들이 참석했다. 조르디 나바라 등 필리핀의 떠오르는 셰프들에 이르기까지 총 20명이 ‘지속 가능한 미식 세계’란 주제를 다뤘다.

물론 사흘이라는 기간 동안 셰프들의 짧은 강연에서 세계를 깨칠 만한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저마다의 작은 실천 사례가 참석한 청중은 물론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독자들 중 누군가에게라도 작은 영감이 된다면 그것이 보다 나은 내일의 페이지를 열어갈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강연장에서 인상적이었던 셰프 3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스웨덴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오악센 크로그 앤드 슬립’의 망누스 에크 셰프는 5년 연속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인물이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자신에게 영광을 안겨준 혁신적인 레시피 몇 개를 공개했다.

망누스 에크 셰프의 모습.
망누스 에크 셰프의 모습.

평소 식재료 탐험가로도 불리는 에크 셰프는 지역의 식재료만 사용해 요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산 해초와 사과를 곁들인 성게 크림, 사워 크림을 곁들인 새알 고기(럼프피시)의 알 등이 그의 대표적 요리. 그의 요리는 자신의 정원에서 발견된 허브와 채소들, 발틱해의 해산물에서 비롯된다. 작은 농장도 운영하며 직접 키운 소와 채소로 요리를 선보이는 셈이다.

그는 지역의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대표 요리 중 감칠맛 풍부한 버섯·해조류 육수에 아이슬란드산 마호가니 조개가 담긴 요리를 예를 들었다.

“이 요리에 사용하는 조개의 나이는 60세예요. 저는 60년 된 조개만 사용합니다. 60세 된 조개는 더 이상 번식을 하지 않죠. 따라서 이들을 수확하는 것은 자연 생태계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 않아요.”

줄리앙 로여 셰프의 비둘기 요리. 가슴살은 바비큐로 다리는 콩피로 간은 따로 떠먹는 파르페로 조리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것 없다.
줄리앙 로여 셰프의 비둘기 요리. 가슴살은 바비큐로 다리는 콩피로 간은 따로 떠먹는 파르페로 조리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것 없다.

싱가포르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이자 아시아의 베스트 레스토랑 50곳 중 하나인 ‘오데트(Odette)’의 줄리앙 로여 셰프는 싱가포르에서 지속 가능한 미식을 추구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수입하는 싱가포르에서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식재료를 수입해야만 해요.”

하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이를 실천하기 위한 셰프의 고민은 생산자의 발굴과 좋은 식재료의 사용에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싱가포르 같은 환경에서는 지속 가능한 실천을 따르는 생산자를 찾아내고 거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셰프로서 의무는 좋은 식재료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되도록 음식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표적인 메뉴가 비둘기 요리예요, 머리를 포함해 비둘기의 모든 부위를 사용한 요리입니다. 음식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제 노력이 담겨 있기도 하죠.” 이 셰프는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구현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도 매우 사소한 개인의 행동으로 실천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벨기에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헤르토그 얀’의 게르트 드 만젤리르 셰프의 강연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벨기에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가져온 식재료에 마닐라 현지 식재료를 더해 9가지 화려한 요리를 선보였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마닐라를 개념적으로 해석한 이른바 ‘마닐라 정원 속 산책(A Walk Through the Gardens of Manila)’이라는 창작요리. 마닐라의 인기 레스토랑 ‘토요 이터리)’를 방문했을 때 사용된 많은 로컬 재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요리로 마닐라 텃밭에서 발견한 각종 채소를 생으로 사용하거나 절이고 튀기고 삶는 등 다양하게 조리해 하나의 볼에 담았는데 그 맛에 대해 스스로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게르트 드 만제리르 셰프가 만든 요리. 블랙래디시와 토마토가 든 잭피시 요리. 바앤다이닝 제공
게르트 드 만제리르 셰프가 만든 요리. 블랙래디시와 토마토가 든 잭피시 요리. 바앤다이닝 제공

드 만젤리르 셰프는 평소에도 지역 식재료를 깊이 이해하고 사용하려 노력한다. 실제로 그의 대표 요리는 대부분 자신의 텃밭이나 인근 농장에서 재배한 신선한 채소를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다.

시연한 메뉴 중 블랙래디시(검은무)와 토마토 요리도 마찬가지. 아보카도 속에 필리핀의 제철 생선인 잭 피시를 채워 넣은 뒤 다시 얇게 썬 블랙 래디시로 둘러싸 꽃처럼 모양을 냈다. 질 좋은 올리브유과 화이트와인 비네거, 로컬 채소로 만든 신선한 주스를 넣어 풍미를 올리고 여기에 두 가지 종류의 토마토 파우더를 뿌려 완성했다.

“가장 아름다운 요리의 본질은 ‘단순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함이 단지 단순한 요리를 말하는 건 아니죠.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결과가 완성되기까지의 고민과 과정은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드 만젤리르 셰프의 말 속에는 좋은 요리란 단지 지역의 식재료를 사용하고 그 맛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재료를 깊이 이해하고 완성도 있게 단순화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푸드#셰프#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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