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과천과학관 해시계 모형 제 모습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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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경제학 통해 천문기기 연구
정기준 서울대 명예교수

고(古)천문학을 연구하는 경제학자 정기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경기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에서 조선의 천문관측 기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남양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고(古)천문학을 연구하는 경제학자 정기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경기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에서 조선의 천문관측 기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남양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기존 고(古)천문학 연구는 수학으로 분석해야 할 부분이 상당 부분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전공인 계량경제학의 수학으로 들여다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더군요.”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의 연구총서 ‘서운관의 천문의기’(경인문화사)를 출간한 정기준 서울대 명예교수(76)는 최근 서울대 연구실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 교수는 논문이 미국의 계량경제학 교과서에서 다뤄진 경제학자다. 지난해에는 제25회 수당상을 받기도 했다.

“고천문학은 천체가 있는 3차원 공간을 2차원의 구면인 천구(天球)로 바꾼 뒤, 투영을 통해 이를 다시 평면으로 환원시켰습니다. 이를 이해하는 데는 다차원의 수량을 그보다 낮은 차원으로 바꾸는 계량경제학의 ‘좌표변환과 투영’ 기법이 매우 유용합니다. 사실 이 기법 자체가 원래 천문학과의 관련 속에서 발전한 것이죠.”

정 교수는 정년퇴임 뒤인 2006년부터 고천문학과 고지도를 파고들었다. 이 책은 여말선초 천문 관측기관인 서운관에서 사용한 천문의기(天文儀器)의 원모습과 제작 원리를 탐구한다. 그는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의 원래 모습에 관해 새로운 의견을 밝혔다. 세종 당시 제작한 앙부일구를 복원한 모형들에 마치 조선 후기 앙부일구처럼 ‘영침’(影針·그림자를 드리우는 바늘)이 사용된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앙부일구가 시간과 절기를 정확히 나타내려면 수평, 방위를 똑바로 맞추는 일과 더불어 천구의 중심 위치가 정확해야 합니다. 조선 후기 앙부일구에서 ‘영침의 끝’이 자리한 곳이지요. 그러나 세종 대 앙부일구는 영침이 아니라 남북으로 가로질러 ‘둥근 막대’(圓距·원거)를 설치하고 정중앙에 ‘겨자씨 같은(芥然·개연)’ 구멍을 내 그리로 햇빛이 통과하도록 했습니다.”

정 교수는 조선 후기 앙부일구 모형 중에서도 엄밀하지 않게 복원된 것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복궁 사정전 앞에 있는 앙부일구 모형은 정확히 중심에 있어야 할 영침의 끝이 옆에서 봤을 때 살짝 위로 튀어나와 있어요.” 기자가 경복궁에서 살펴보니, 일부러 신경을 써야 보이기는 했지만 0.5cm가랑 돌출돼 있는 건 사실이었다. 정 교수는 국립과천과학관에 복원 전시돼 있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세종 대 처음 제작된 해시계이자 별시계)는 “눈을 대고 관측하는 구멍이 있어야 할 자리가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천문서에 비해 조선의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1795년 편찬된 천문서) 같은 책은 더 이해하기 어렵고, 틀린 구석도 적지 않습니다. 중국은 서양의 천문학 지식을 선교사들로부터 직접 전수받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한 탓입니다.”

정 교수는 “세종 이후 숙종 때까지 한양의 ‘북극고’(北極高·오늘날 위도와 비슷한 개념) 관측에 관한 기록이 없다”며 “세종 이래 열심히 천문의기를 제작하고, 천문을 관측해 온 서운관이 독자적 관측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건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복궁 해시계 모형#과천과학관 해시계 모형#계량경제학#정기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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