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속기록 공개하라” 후유증 앓는 법관회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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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부게시판에 “전 과정 밝혀라”… 일부 판사는 공정성 문제 제기
“결론 정해두고 형식적 진행” 주장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 등을 결의하면서 회의 내용 대부분을 비공개한 데 대해 법원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일선 법원 판사들은 20일 법원 내부전산망에 글을 올려 “법관회의 전 과정을 기록한 속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사법부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의 비밀스러운 운영을 비판하며 소집된 법관회의가 불투명한 회의 진행으로 구설에 휘말린 모양새다.

○ “법관회의 기록 영상, 녹취파일 공개하라”

법원 내부전산망에 마련된 법관회의 익명게시판에는 20일 오후 7시까지 “법관회의 전 과정을 공개해 모든 판사들이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쳐 결의안이 나왔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판사들의 글이 7, 8건가량 올라왔다.

전날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법관회의는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에 비판적인 법관 동향을 파악·관리했다는 의혹(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법관회의 상설화 추진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 축소 외압 시도 관련자 문책 등 3가지 사항을 결의했다. 하지만 내부 논의 및 표결 과정 등 회의 내용 대부분을 비공개했다.

이에 대해 판사들은 “논의 내용이 가감 없이 들어 있는 속기록을 보고 싶다”고 요구했다. 법관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속기사들이 참여해 전 과정을 기록했다. 이를 공개해 어떤 과정을 거쳐 회의 결과가 나왔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한 판사는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결의 내용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어제 회의에서 어떤 논의를 거쳐 결의가 됐는지 속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 밖에 “속기록을 보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내 권리다”, “속기록을 보고 싶다. 대표가 아닌 판사에게는 (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뜻이냐”는 글도 올라왔다. 대구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에 요구했던 것은 ‘밀실 사법행정’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으며 이는 법관회의도 마찬가지”라며 “법관회의 참석자에게 권력을 준 것이 아니므로 회의 과정은 일선 법관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관회의 공보관인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43·29기)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대법원 규칙에 각급 법원 판사회의는 비공개로 정하고 있어서, 이를 법관회의에 준용한 것”이라며 “(속기록 공개 요구는) 의장과 간사가 논의해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비민주적 회의 진행도 논란

법관회의가 이번 회의 소집을 주도한 인권법연구회 측이 제안한 결론을 추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의결을 공개 거수 방식으로 한 점이 가장 논란이 됐다. 부산지법의 한 판사는 “참석자 명단을 비공개하면서 표결은 공개적으로 하는 회의가 어디 있나. 표결은 비공개로 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한 중견 판사는 법관회의에서 인권법연구회가 제안한 내용에 반대했다가 인권법연구회 회원들로부터 “각급 법관회의에서 이미 논의한 거 아니냐”,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다”며 힐난을 당했다. 이 모습을 본 한 회의 참석자는 “마치 몰매를 맞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결론은 이미 정해 둔 채 형식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회의였다”며 “다음 회의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법관회의 측은 “충분한 토론과 표결을 거쳤다”며 “(거수 방식 표결은) 회칙으로 정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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