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한]‘강제입원율 1위’ 불명예 벗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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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키려면 다른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1명이 추가로 2주 내 동의해야만 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이 지난달 30일 시행됐다. 정신질환자의 억울한 입원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시행되다 보니 시작부터 논란이 많다.

무엇보다 다른 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왕진을 와야 하는 상황이라 인력 부족이 큰 걸림돌이다. 복지부는 어쩔 수 없는 경우 같은 병원의 의사 두 명이 입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 예외조항을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뒀다. 가까스로 숨통은 트이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신건강복지법에는 강제입원 논란 때문에 우리가 잘 몰랐던 중요한 내용이 숨겨져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복지서비스의 근거를 만든 것이다. 개정법은 그동안 강제입원 절차 개선을 통한 ‘억울한 입원’의 최소화와 함께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정신질환자의 치료 및 재활을 돕는 근거를 처음으로 마련했다.

정신보건법이 1995년에 제정돼 벌써 22년이 흘렀고, 장애인복지법은 1981년에 제정돼 36년이나 됐지만 지금까지 그 어디에도 정신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위한 복지서비스의 근거는 없었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정신질환의 낙인과 편견은 컸지만,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정신질환 해결책을 환자나 가족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조차 충분치 않았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관련법이 이제야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장애인의 경우 수많은 관련 단체들이 인권 또는 사회적인 권익 향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를 통해 장애인 지원 정책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공공기관에서 전 직원의 3.2% 이상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거나, 중증장애인 생산품을 총 구매액의 1% 이상 사도록 하는 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자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그늘에 묻혀만 있었다. 오히려 ‘정신질환자=위험인물=범죄자’로 연결하는 ‘지나친 편견’으로 말미암아 정신질환자의 복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철저히 배제됐다.

정신질환은 대부분 당뇨병과 고혈압처럼 적절한 치료와 지원 및 관리를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얼마든지 영위할 수 있는 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기 때문에 그냥 놔두는 사람들이 있다. 조현병은 치료해도 낫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진 이들도 많다. 정신질환의 낙인으로 환자를 방치하는 경우가 참 많은 이유다.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은 사회적 편견과 싸우면서도 동시에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결국 강제입원이 많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제입원율은 67%로 독보적인 세계 1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와 더불어 말이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은 모두 강제입원율이 10%대에 불과하다.

이번 개정 복지법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가 입원 대신 집과 병원 사이 중간 개념의 주거시설을 만들어 치료 및 직업 재활을 할 수 있도록 복지서비스를 지원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또 학교나 사업장 같은 곳에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지원 사업(조기 발견,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 등)을 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예산 확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지역 주민들이 정신복지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기는 님비 현상의 극복이 가장 큰 난관이다. 지역 이기주의와, 정신질환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이겨내지 못하면 강제입원율 1위의 불명예는 결코 벗을 수 없다. 자살률 1위의 부끄러운 타이틀과 함께 말이다.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정신건강복지법#장애인복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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