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호는 기억왕? 사진찍듯 기억하는 훈련법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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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훈련법 직접 배워보니…

7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억력스포츠협회에서 정계원 이사(왼쪽)가 기자에게 사람의 얼굴과 이름 외우는 기억법을 알려주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7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억력스포츠협회에서 정계원 이사(왼쪽)가 기자에게 사람의 얼굴과 이름 외우는 기억법을 알려주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최순실 국정 농단에 관한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 내용 가운데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학부모들의 시선을 끈 뉴스가 있었다. 바로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의 ‘사진 찍듯 기억하는 비상한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적잖은 학부모들은 최 씨의 태블릿PC 암호 패턴을 잊지 않고, 대통령의 차명 휴대전화 번호 마지막 네 자리가 역삼각형 모양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번호를 기억해낸 장 씨의 능력에 주목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장 씨는 ‘이미지’를 활용해 주요 정보를 기억해 낸 것으로 보이며 이 같은 기억력은 ‘천재적’이라기보다는 누구나 훈련을 거치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실제로 훈련을 통해 기억력을 신장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7일 기자가 서울 강남구의 한국기억력스포츠협회에 가서 정계원 이사(26)에게 직접 기억법을 배워 봤다.

○ 사진처럼 이미지와 연결시켜 기억

기억법의 핵심은 지식, 관찰, 결합을 통한 ‘의미 부여’다. 기억해야 할 정보에 의미를 부여해 뇌에 오래 남도록 하는 것이다. 지식은 뇌에 저장된 일종의 장기기억으로 배경지식이 많으면 새로 알게 된 정보에 의미를 부여할 때 연결고리를 만들기 쉽다. 지식이나 새로운 정보의 특징을 잡아내려면 관찰 능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결합해야 낯선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기억법으로는 장소 기억법이 있다. ‘기억의 궁전’ 혹은 ‘기억 저장소’라고도 불린다. 머릿속에 장소를 만들어 놓고, 기억하고자 하는 정보를 이미지로 만들어 그 장소와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이때 장소는 집이나 학교 등 익숙한 곳이면 어디든 가능하다. 영국 드라마 ‘셜록’을 보면 주인공 셜록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 저장된 정보나 지식을 꺼내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때 셜록도 장소 기억법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인도 기억법 훈련을 통해 드라마 주인공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스페인 휴가를 꿈꾸는 기자가 관련 정보를 ‘집’이라는 장소와 연결시켜 외워 봤다. 집으로 가는 동선이나 집의 구조는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일종의 ‘장기기억’에 해당한다.

○ 선명하게 ‘그려진’ 기억

퇴근 후 집에 돌아왔더니 현관 앞에 상큼한 향이 물씬 나는 주황색 오렌지 꽃(스페인의 국화)이 한가득 놓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엌에 있는 수납 바스켓(스페인의 지역어인 바스크어) 옆에 머리를 양 갈래(갈리시아어)로 묶은 여자가 까탈스럽게(카탈루냐어) 스페인어로 말을 하고 있다. 부엌을 지나 거실로 들어가자 소파 위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한 사람은 왕관을 쓰고 손가락으로 6자를 표시하며 자신이 스페인의 왕 ‘펠리페 6세’라고 말한다. 게임 캐릭터 마리오를 닮은 옆 사람은 자신이 스페인의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라고 한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50, 40, 30이라는 숫자가 나오며 스페인의 면적이 50만4030km²라고 알려준다.

실재하는 장소에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정보를 넣어 보니 암기를 위해 반복적으로 숫자나 명칭을 되뇌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외워졌다. 스페인이 오렌지 꽃을 국화로 정하고, 3개의 지역어(바스크 갈리시아 카탈루냐)를 쓰며, 국왕이 있는 의원 내각제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정 이사는 “무작정 반복해 외우는 것이 암기라면, 기억은 주어진 정보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장소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생성되고 그 이미지에 새로운 정보가 결합돼 뇌에 더 오래 기억된다”고 말했다.

○ 공부에 도움 되려면 원리 이해 필수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억법을 활용하면 집중력 상상력 창의력 관찰력 등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정 이사는 “일단 곰곰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고, 정보를 이미지화하는 연습을 하면 자연스레 상상력이 발달한다”며 “평소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해 포인트를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관찰력도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학생이 공부를 할 때도 기억법은 유용하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정보를 외워야 한다고 하면 교과서에 나온 관련 사진이나 그림을 모아 그 공간을 기억 저장소로 삼을 수 있다. 농민이 달려가는 모습이나 이를 저지하는 관군을 상상하면서 해당 장소 안에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상세 내용을 저장하는 식. 역사적 사건을 마치 내 눈 앞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인 듯 이미지로 기억하면 오래 기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유헌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장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을 활용한 학습은 뇌를 자극해 기억을 오래 유지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억법을 연습한다고 언제나 학교 시험 점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수학 등 논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학문을 공부할 때는 이해가 우선이다. 암기 과목은 기억법을 활용해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이때도 반복 학습이 필요하다. 서 원장은 “왕 이름을 외울 때 ‘태정태세문단세…’ 하는 식의 암기는 금방 잊혀지게 마련”이라며 “학습에서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리 이해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노지원 zone@donga.com·최예나 기자
 

※기억력 스포츠

기억력을 체스나 바둑처럼 훈련과 연습을 통해 실력을 키운 뒤 겨루는 스포츠다. 마인드맵 창시자 토니 부전과 체스 마스터인 레이먼드 킨이 1991년 영국에서 세계기억력대회를 열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인간의 두뇌 능력 중 하나인 기억력을 측정하고 겨루는 대회로 종목은 스피드 넘버(예컨대 5분간 얼마나 많은 숫자를 기억하는지), 스피드 카드(카드 한 벌·52장을 얼마나 빨리 기억할 수 있는지), 얼굴-이름(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지) 등 총 10개다. 지난해 7월 한국에도 기억력스포츠협회가 설립됐고, 2월 제1회 한국 국제기억력대회가 열렸다.
#최순실 국정 농단#장시호#태블릿pc 암호 패턴#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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