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 면면에 ‘정책 색깔’ 담겨… 미리 검증받아야 국정 힘받아

송찬욱 기자 , 문병기 기자 , 박성진 기자 입력 2017-03-06 03:00수정 2017-03-06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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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섀도 캐비닛’ 공개하자]사전검증 왜 필요한가
경제와 안보 위기를 동시에 맞닥뜨린 상황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심판으로 직무가 정지돼 있고 야당은 ‘조기 대선 모드’로 전환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면 대선은 60일 안에 치러져 대선 주자들의 능력을 검증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탄핵이 기각돼도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차기 정부가 안정적으로 출범하려면 대선 후보들이 핵심 부처에 대한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미리 공개해 충분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기 정부가 처음 맞닥뜨릴 ‘인사 리스크’를 사전에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 인수위도 없는 새 정부, 아마추어 논란 우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날 내각에 박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국무위원은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 한 명뿐이었다. 장관은 모두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었다. 정부 출범 전 48일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운영됐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 등 시작부터 삐걱댄 것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권력 이양기에 혼란을 줄일 완충 역할을 하는 인수위 활동이 없이 대통령은 바로 취임한다. 정권 초반 불안한 ‘동거(同居) 정부’의 기간이 길어지면 조각(組閣)에 시간을 허비해 위기 극복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과거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제기된 ‘아마추어 논란’도 차기 정부에서 극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이 섀도 캐비닛을 구성해 발표하면 상대 후보와 언론을 통한 사전 검증이 이뤄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차기 정권 출범과 함께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등 곧바로 정부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는 셈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5일 “인수위가 있어도 정부 출범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데 인수위가 없다면 더할 수밖에 없다”며 “섀도 캐비닛을 발표해 후보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구성원들의 경력을 보면 새 정부의 지향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번처럼 비상상황에선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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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일찌감치 섀도 캐비닛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적어도 어떤 분들이 함께 국정을 수행하게 될지 가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조기 대선 시) 당선증을 교부받으면 곧바로 직무 수행을 해야 하는 만큼 후보와 정당이 내각 구성 로드맵을 사전에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섀도 캐비닛 구성을 포함한 정권 인수 과정을 당과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생각이다.

○ 경제 국방 등 ‘이너 캐비닛’이라도 우선 공개해야

그렇다고 모든 부처의 장관 후보자를 전부 사전에 내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문가들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려면 국무총리와 경제, 외교, 국방 사령탑 등 ‘이너 캐비닛(Inner Cabinet·핵심 내각)’만이라도 우선 공개해 미리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선 주자들이 사전에 국무장관이나 국방장관, 재무장관 등 핵심 각료들을 중심으로 섀도 캐비닛을 구성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 내 ‘자리 다툼’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유력 주자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지지율 반등을 위해 ‘박근혜 국무총리’ 등의 내용을 담은 섀도 캐비닛 구성을 검토했지만 실제 발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당시 이 전 총재를 도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결국 핵심은 (후보와 함께할) 사람이지만 거기(섀도 캐비닛)에서 빠진 모든 사람이 원수가 돼서 오히려 내부에서 엄청난 파열음이 난다”며 “당시에도 당이 두 쪽이 날 것 같아 못했다”고 회고했다. 동아일보가 2002년 12월 이회창, 노무현 당시 후보 측 주요 인사들을 취재해 사실상의 섀도 캐비닛 구성안을 보도하자 각 캠프 내부에서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이 국정공백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지금 대선후보 캠프는 양적인 확대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어떤 사람과 일을 할지 유권자가 미리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단수가 아닌 복수로 후보를 발표하면 사전 검증도 가능하고 국민들도 분야별 팀을 보고 신뢰 여부를 정할 수 있다”고 ‘복수 후보 발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어느 당이 집권해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부를 출범해야 하는 만큼 협치(協治) 가능성을 열어 놔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섀도 캐비닛 공개에 공감하면서도 “캠프 구성원뿐 아니라 경쟁 상대 캠프에 있는 분도 좋은 인재면 데리고 와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일각에선 섀도 캐비닛 공개가 대선 후보가 ‘직책’을 약속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섀도 캐비닛은 과거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사례처럼 정당 정치 활동의 하나로 보고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송찬욱 song@donga.com·문병기·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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