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다 가는 길 무슨 재미… 돈 불리다 돈 키우고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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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 책 펴낸 금융인 출신 농장주 이도헌씨

《 “쭈쭈쭈쭈∼.”충남 홍성군 결성면에 자리한 돼지농장 ㈜성우의 이도헌 대표(49)가 5일 방목해 키우는 까만 돼지를 보며 소리 내 다가가자 돼지들이 달려왔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은 듯 얌전히 있었다. 돼지 농장주 4년 차인 이 대표는 월스트리트에서 헤지펀드 운용에 참여하고 아시아개발은행 인도네시아 자문역,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컨설턴트, 한국투자증권 상무를 지냈다. 글로벌 금융인이 돼지농장주로 변신한 이유는 뭘까. 그는 최근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스마트북스)를 펴냈다. 》
 
이도헌 씨가 고급 돼지 사육을 위해 시범적으로 방목해 키우는 검은 돼지를 쓰다듬고 있다. 원천마을의 막내인 그는 마을 잔치 때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그는 이날도 “부녀회장님과 상의할 일이 있다”며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급히 농장을 떠났다. 작은 사진은 이 씨가 최근 펴낸 책 표지. 홍성=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도헌 씨가 고급 돼지 사육을 위해 시범적으로 방목해 키우는 검은 돼지를 쓰다듬고 있다. 원천마을의 막내인 그는 마을 잔치 때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그는 이날도 “부녀회장님과 상의할 일이 있다”며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급히 농장을 떠났다. 작은 사진은 이 씨가 최근 펴낸 책 표지. 홍성=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평범한 삶 따분해”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 3학년 때 파생상품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국내에서 파생상품에 관심을 가진 이는 극소수였다. 28세에는 금융 컨설팅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설립해 7년 후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제가 ‘삐딱선’을 타는 기질이 있어요. 남들이 가는 길은 재미가 없어요.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 성과를 냈을 때 맛보는 짜릿한 쾌감이 좋아요.”

 쌍용증권에 입사한 그는 미국 뉴욕 주재원으로 나가면서 국제 금융계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2010년 금융계 구조조정을 겪으며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졌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노키아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걸 보며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 업종을 찾았는데 먹을거리와 관련된 1차 산업이더라고요.”

 한국 소비자들이 수입한 냉동돼지고기보다는 얼리지 않은 냉장육을 선호해 유통기간이 짧은 돼지고기는 국내산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자국 내 돼지고기 수요도 감당하지 못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돼지농장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물론 고민도 적지 않았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딸, 아들의 학비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대에도 일하고 싶었기에 행동에 나섰다.

○ 자연의 시간 따른 삶


 날벼락이 떨어졌다. 투자한 농장이 부도 위기에 처한 것.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13년 농장 경영에 뛰어들었다. 농장 운영은 만만치 않았다. 그해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돼지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자식이 죽어나가는데 병원비가 없는 부모 심정이었어요. 구제역이 인근 농가까지 번졌을 때는 전염될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에 올라 바람 방향을 살피며 가슴을 졸였고요.”

 문제가 생기면 경험 많은 농장 직원 6명과 머리를 맞댔다. 축사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돼지의 성장 단계에 따라 축사를 구별해 온도와 사료 배합도 조정했다. 처음엔 새끼 돼지만 따로 키우는 축사가 없었다.

 그는 현재 4만9587m²(약 1만5000평) 크기의 이 농장에서 돼지 7800여 마리를 키운다. 돼지 사육 밀도는 일반 농가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생산성은 전국 상위 3%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에게 성과급도 지급하고 있다. 농장에는 돼지 분뇨로 에너지를 만드는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세울 계획이다. 덴마크, 스페인 등의 선진 농가를 방문해 고급 돼지를 키우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나는 돼지농장으로…’에는 고군분투했던 과정과 인생 2막을 준비한 구체적인 방법,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 대한 당부가 자세히 담겨 있다. 특히 그는 책에서 인생 2막의 원칙 중 하나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를 들었다. 그는 임원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직원들을 평가해 구조조정하는 업무를 떠맡아 마음에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접 결정한 일은 낯설고 힘든 상황을 견디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다른 이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고 좋은 돼지를 키우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하다”며 “홍성 돼지를 돼지업계의 ‘인텔’로 만들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홍성=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돼지농장#이도현 대표#(주)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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