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상호]이지스함, ‘반쪽 방패’를 넘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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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아테나는 ‘전쟁의 여신’으로 불린다. 아버지(제우스 신)가 건네준 ‘천하무적 방패’ 덕분이었다. 금줄로 장식된 이 방패에는 영웅 페르세우스가 잘라낸 괴물 메두사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방패 속 메두사와 눈을 마주친 적군은 모두 돌로 변해 아테나는 연전연승(連戰連勝)을 거뒀다고 한다.

이 방패의 명칭이 이지스(Aegis)다. 미국이 개발한 이지스 전투체계의 어원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제로센(零戰) 전투기의 자살특공대(가미카제·神風)에 호되게 당한 미 해군은 ‘신의 방패’ 같은 철벽 방어수단을 원했다. 이지스함은 그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다. 이지스함은 첨단 전투시스템과 레이더로 적기와 미사일을 탐지, 요격해 아군 함대를 방어하기 위해 개발됐다. 냉전 이후 핵 탑재 탄도미사일의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이지스함은 미사일방어체계(MD)의 주력(主力)으로 진화했다. 적국이 쏜 핵미사일이 자국 영토에 떨어지기 전에 공중에서 격파하는 게 주 임무가 된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은 2000년대 중반부터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SM-3 미사일을 이지스함에 실전 배치했다. SM-3 미사일은 150∼500km 고도로 비행하는 핵미사일을 파괴할 수 있다. 그 이하 고도로 날아오는 핵미사일 요격은 지상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패트리엇(PAC-3) 미사일이 맡는다. MD의 요체는 적의 핵미사일을 가능한 한 빨리 포착해 낙하 고도별로 연이어 요격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지스함과 사드, PAC-3 미사일이 상·하층 고도에서 여러 차례 요격을 하면 파괴 확률도 높아진다. 이런 측면에서 미일 이지스함은 ‘신의 방패’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에 반해 한국군 이지스함은 ‘반쪽짜리 방패’와 같은 처지다.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3척 모두 탄도탄 요격 능력이 없다. 2008년부터 배치된 한국군 이지스함은 전투 체계와 레이더 성능이 미일 이지스함을 앞선다. 수직미사일 발사대도 128개나 실려 미국(96∼122개)과 일본(90∼96개) 이지스함보다 ‘펀치력’이 강하다. 하지만 SM-3 같은 요격미사일이 없으니 북한의 핵미사일이 날아와도 손 쓸 도리가 없다. ‘이빨 빠진 호랑이’나 ‘발톱 없는 독수리’에 비견되는 이유다.

해군은 2020년대 중반부터 탄도탄 요격 능력을 갖춘 차기 이지스함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북한은 수년 내에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하면 최소 5년 안팎의 북핵 방어 공백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기존 이지스함을 개량해 탄도탄 요격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차제에 하층방어(50∼70km) 위주의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KAMD와 사드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있다. 무수단 중거리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모두 고각(高角)으로 발사해 KAMD와 사드의 요격 고도를 넘긴 데서도 그 저의가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와 군은 향후 5년을 북핵 방어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다중 MD 구축에 나서야 한다. 미국 MD 편입 논란이나 주변국 반발을 우려해 구멍이 숭숭 난 핵방어망을 방치하는 건 국가의 직무유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타협이나 양보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초유의 북핵 안보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 절박한 시점이다. 이지스함의 ‘반쪽 방패’부터 온전한 ‘신의 방패’로 만들어야 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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