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낮은 젊은 선수들에 용돈주며 ‘검은 유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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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배경엔 ‘스폰서 문화’
프로야구 초창기엔 조폭들 과시용… 불법도박 시장 커지며 범죄 늪으로

“검은 유혹의 온상인 스폰서 문화의 현실을 선수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21일 이태양(전 NC)과 문우람(상무)의 승부 조작 사건에 대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내놓은 사과 성명의 한 부분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단어는 ‘문화’다. 스폰서 문화는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서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1군에서 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는 물론이고 감독과 코치들 주변에도 스폰서라 불리는 인물들이 있다.

범위가 넓을 뿐 아니라 역사도 오래됐다. 프로야구 초창기엔 주로 조직폭력배들이 자기 지역 출신 유명 선수들의 스폰서로 나서곤 했다. 선수들을 동생이라 부르며 술과 밥을 사주고 용돈을 쥐여 줬다. 당시로선 귀하던 외제 승용차를 선물 받은 선수도 있었다. 그 대신 중요한 자리에 선수들을 불러 얼굴 과시를 했다. 바람직하진 않았지만 최소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스폰서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야구팬으로서 ‘순수하게’ 아는 동생들의 뒤를 봐주는 지역 유지나 사업가도 있지만 처음부터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스폰서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은 불법 스포츠토토 시장이 팽창하던 시기다. 이들의 타깃은 연봉이 상대적으로 적은 젊은 선수들이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스타급 선수들은 금전적으로 크게 아쉬울 게 없다. 수도권 구단의 A 선수는 “어릴 때 몇 번 ‘아는 형님’들이 주선한 자리에 나가 술도 마시고 용돈도 받았다. 하지만 원치 않는 자리에 자꾸 불려나가는 게 싫어 어느 순간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하고 하고 싶은 것 많은 젊은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유혹에 쉽게 노출돼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선배 선수들은 비싼 차를 타고 고급 음식점을 드나든다. 누군가 이를 공짜로 제공해 준다면 귀가 솔깃해지기 쉽다. 이런 자리가 한두 번 반복되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범죄의 늪에 발을 담그게 된다. 한번 발을 들이면 약점을 잡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지난해 연봉이 3300만 원이었던 이태양은 ‘아는 형님’의 가면을 쓴 승부 조작 브로커에게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스폰서 문화가 사생활 영역에 속해 있어 구단들이 막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승부 조작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교육을 통한 재발 방지책을 내놓지만 사건이 계속 재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선수 자신들이다. 스스로 유혹을 뿌리치지 않으면 스폰서 문화는 더욱 은밀하고 음성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nc 이태양#승부조작#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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