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 상징된 히잡… ‘神政일치 질주’ 불안 커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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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불발 터키는 지금/조동주 특파원 이스탄불 3信]
친정부시위 여성 절반 히잡 착용… 공무원 채용때 ‘가산점’ 얘기도
터키, 쿠데타 장성 재판 시작… 에르도안 “관련자 사형 처할수도”
EU “기본권-법치 무시해선 안돼”

히잡을 쓴 터키 여성이 18일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벌어진 친정부 시위 현장에 나와 시민들에게 국기를 나눠주는 이들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히잡은 한때 가난한 여성의 상징처럼 비쳤지만 최근 터키 정부가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면서 머지않아 여성들의 필수 
복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탄불=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히잡을 쓴 터키 여성이 18일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벌어진 친정부 시위 현장에 나와 시민들에게 국기를 나눠주는 이들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히잡은 한때 가난한 여성의 상징처럼 비쳤지만 최근 터키 정부가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면서 머지않아 여성들의 필수 복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탄불=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조동주 특파원
조동주 특파원
“이런 추세라면 터키가 히잡을 무조건 강요하는 사회로 변할까 두려워요.”

터키 쿠데타가 진압된 지 넷째 날인 19일 이스탄불 시내에서 만난 여성 살렌 씨(24)는 광장으로 나온 친(親)정부 시위대가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국기를 흔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같이 말했다. 터키는 정교(政敎)분리가 건국이념이지만 15일 밤 발생한 쿠데타의 공포를 잊지 못하는 일부 국민 사이에서 ‘이슬람 기치 아래 뭉쳐 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신정(神政)일치 국가를 향해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집권 14년 차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스타파 케말 초대 대통령이 확립한 세속주의 정교분리 원칙을 뒤흔들며 이슬람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케말 대통령이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킨 아야 소피아(옛 성 소피아 대성당) 내부에서는 이달 2일 85년 만에 기도 시간을 알리는 방송(아잔)이 울려 퍼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신심이 깊은 다수 하층민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종교가 정치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부 국민은 터키 사회가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군부의 쿠데타 실패 후 급격히 경직되면서 ‘이러다 이슬람이 국교가 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터키는 표면적으론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이지만 이스탄불 시내 곳곳에서 교회와 성당을 쉽게 볼 수 있다. 청소년이 신분증을 발급받을 때 통상 부모 뜻에 따라 이슬람이라고 적고 실제론 다른 종교를 믿는 경우도 많다.

터키 사회의 종교적 경직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히잡의 부활이다. 정부의 친이슬람 정책으로 과거보다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는 여성이 크게 늘었다. 최근엔 공무원을 뽑을 때도 같은 조건이면 히잡을 쓴 여자를 선호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복장의 자유를 누려 온 20대 여성 니다 씨는 “앞으로는 히잡을 안 쓰는 여성이 소수로 전락할 것이다. 주류가 되기 위해 억지로 히잡을 써야 할 날이 올 것 같다”고 걱정했다.

상류층 여성처럼 보이고 싶은 일부 여성들 사이에선 히잡 쓰기가 이미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슬람주의를 주장하는 정의개발당(APK)은 부유하고 보수적인 상류층이 주로 지지하는 정당이란 이미지가 있다. 4일 내내 친정부 시위가 이어진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도 여성들 가운데 히잡을 두르고 터키 국기를 흔드는 이가 절반 가까이 됐다. 셀젠 씨(24)는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히잡은 가난한 사람들이 쓰던 것이었지만 요즘은 상류층의 상징으로 변하고 있다. 요즘 분위기를 보면 히잡이 의무화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전했다.

터키 정부는 수도 앙카라에서 아큰 외즈튀르크 전 공군사령관을 포함해 쿠데타 가담 혐의를 받고 있는 장성 26명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쿠데타 연루 혐의로 체포된 군 장성과 판사, 검사는 7500명이 넘고 공무원 8777명의 업무가 중지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터키는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면서 2007년 사형제를 폐지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대표는 18일 기자회견에서 “터키 정부는 기본권과 법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함께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터키는 최고 수준의 민주적인 제도와 법치를 유지해야 한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을 압박했다.

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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