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세계적인 음악가요? 정명훈 다음에는 조성진이지요. 우리 애들요? 대가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도 허허.” 22일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만난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 전 서울대 음대 교수(87)는 2시간 넘는 긴 인터뷰에도 흐트러짐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 올해 우리 나이로 미수를 맞은 그는 다음 달 뜻 깊은 행사를 맞는다. 그의 아들들이자 형제 음악가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50·대구가톨릭대 교수)과 첼리스트 양성원(49·연세대 교수)을 비롯해 국내 실력파 연주자들이 3월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양해엽 선생께 헌정하는 사랑의 콘서트’를 연다. 두 아들이 기획한 때문인지 콘서트 이야기를 하며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양 전 교수는 국내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다. 중학교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바이올린을 구입해 독학으로 배웠다. 바이올린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프랑스 파리는 세계 유명 음악가가 모인 곳이었어요. 파리에서 머문 4년 동안 꿈에서만 볼 수 있었던 전설적 음악가들을 모두 봤어요. 나만큼 20세기 중반 활약했던 음악가들을 많이 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자랑거리 중 하나죠.”
유학을 떠나기 전 그는 운명적인 인연을 맞는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직접 가르친 것.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과 피호영 등 국내 대표 음악인들을 많이 가르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로 정경화를 꼽았다.
“1954년에 정경화를 처음 봤어요. 정경화 모친이 만나자고 해서 집에 갔더니 꼬마가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더군요. 잘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그 안에 보이는 것이 있었어요. 뭘 해도 크게 될 아이라 생각해 1년 반 열심히 가르쳤어요. 지금도 정경화는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할 때 ‘제 스승입니다’라고 이야기해요. 고마운 일이죠.”
그의 4남매 중 장남 양성식과 차남 양성원이 세계적 음악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도 여전히 그의 비평을 두려워한다. 양 전 교수의 아내인 서정윤 씨(78)는 “아들들이 연주회가 끝나면 ‘아버지가 뭐라고 했어요?’ ‘연주 좋아하셨나요?’라고 묻는다. 정말 냉철하게 비평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의 등장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이 발전한 것을 기뻐했다. “말도 못 하게 발전했어요. 특히 조성진을 보면 놀라워요. 병이 날 만큼 열심히 연습하는 스타일이에요. 다른 사람 같으면 병이 나겠지만 조성진은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잘하는 손을 가졌어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피아니스트가 될 겁니다.”
70년 넘게 음악인의 길을 걸은 그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음악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누가 시켜서 음악을 배운 게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바이올린을 시작했어요. 다만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좀 더 이론적으로 파고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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