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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탈북민 대상 멘토링은 왜 성공하기 힘들까

입력 2015-12-03 03:00업데이트 2015-12-03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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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
“탈북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할 수 있는 좋은 사업이 뭘까요. 아이디어를 구합니다.”

보통 이런 회의가 열리면 흔히 나오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탈북민은 한국 물정을 잘 모르니 우리가 가서 일대일로 조언을 해주는 멘토링 사업이 어떨까요.”

취지도 좋고,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도 없어 사업 아이템으로 채택되는 일이 많다. 나는 몇 년 동안 탈북민 관련 사업 심사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많은 제안서가 멘토링을 아이템으로 하고 있었다. 유사한 아이템으로 자매결연도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지켜본 결과 멘토링은 성공보단 실패가 더 많았다. 서로 좋게 만났다가 상대에 대한 실망만 가득 품고 헤어진 일도 부지기수다. 이유는 단 하나.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젠 솔직히 제안서만 봐도 이 멘토링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가늠이 된다.

멘토링에 참여해 본 한국인들을 만나면 이런 후기를 듣기 일쑤다.

“암만 얘기해줘도 이 사람들이 듣질 않아요. 역시 북한에서 뿌리 깊게 박힌 사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나 봐요.” “돈도 없으면서 차부터 사는 걸 보고 실망했어요.”

그럼 탈북민은 어떤 반응일까.

“도와줄 생각은 안하고 만날 이래라 저래라 훈계만 합니다.” “북에선 간부들만 타는 승용차를 타고 싶어 한국에 왔어요.”

객관적으로 보면 도움을 바라고, 차부터 사는 탈북민의 잘못이 더 큰 것 같다. 하지만 탈북민의 자리에 서보자. 갓 입국한 이들 중엔 몇백만 원 받은 정착금을 입국 브로커에게 주고 나면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어 당장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해서 살아야 할 사람이 많다. 이때 한국인이 찾아와 도움을 준다면 속으론 “그래도 이 사람들은 나보다 잘사니까 내가 어려울 때 방조(도움) 좀 해주겠지” 이런 생각을 품기 일쑤이다. 하지만 찾아온 멘토는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조언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는 사람에게 “한국 사회에서 잘살려면 말이죠” 하는 식의 말을 해주기 십상이다. 정작 경제적 도움을 주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면 탈북민은 “도움 줄 생각도 없으면서 귀찮게 말만 쨀쨀(번지르르) 잘하네”라고 생각해 마음에 빗장을 지르고 만다. 차를 산 탈북민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또 “암만 말해줘도 달라지지 않네”라고 포기한다.

탈북민은 남쪽에선 시간이 곧 돈인 줄 모른다. 누군가 시간을 내서 찾아와 조언해 주는 것이 감사한 일임을 깨닫기까진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물론 “나는 탈북민과 잘 지냈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거나, 아니면 형식적으로 만났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 글은 탈북민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라는 주장이 절대 아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는 고맙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는 뜻이다. 탈북민을 이해하지 못한 채 탁상머리에서 생각한 아이디어라면 더욱 그렇다.

흔히 탈북민이 한국에 잘 정착하지 못한다는 뉴스가 뜨면 사람들은 정부 정책을 탓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보건대 정부의 탈북민 정착 지원 정책은 나름대로 잘돼 있다.

나는 탈북민이 한국에 잘 정착하기 위한 3대 요소로 첫째, 탈북민 본인들의 정착 의지, 둘째, 한국 사회의 시선, 셋째, 정부 정책을 꼽는다. 탈북민을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부족이 아니라, 그들을 세금 도둑처럼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탈북민 본인들이 억척스럽게 한국 땅에 뿌리내리려는 의지다. 그런 의지는 누가 찾아가 가르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부모는 아이가 땅에 넘어져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울 때도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린다.

다행히 최근 입국하는 탈북민들은 10여 년 전에 입국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정착을 잘하는 편이다. 나는 그 이유를 북한 장마당에서 시장경제 마인드를 익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잘하나 못하나 상관없이 나라에서 배급 주고, 월급 주던 시대에서 곧바로 탈북해 남쪽에 온 사람들은 여기 와서도 정부나 주변만 바라보고 자기 힘으로 살기 어려워했다. 요즘 입국하는 탈북민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돈이 생기지 않으며, 돈 벌려면 남에게 머리도 숙여야 함을 장마당에서 배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주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내가 탈북민 정착을 돕기 위해 이런 사업을 하려 하니 당신들은 감사히 받아야 한다”는 태도로는 절대 남에서 산 사람과 북에서 살았던 사람이 합쳐질 수 없다.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통일의 중요한 예행연습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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