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형주]전통인가, 개혁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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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힘 키우는 데 초점 맞춘 200년 전통 佛입시 바칼로레아
학문간 벽 깨는 융합교육으로 강력한 개혁 추진하는 핀란드
우리는 언제까지 교육과정 양의 多少나 따지며 엉뚱한 곳에서 답 찾을건가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교육제도를 논하면서 자주 비교하게 되는 나라가 프랑스와 핀란드다. 전통과 역사성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와 융합 지향의 강력한 교육 개혁을 추진 중인 핀란드는 여러모로 다른 메시지를 준다.

프랑스의 교육제도를 표현하는 단어를 고른다면 ‘전통’이 아닐까? 정말 무던히도 안 변한다. 프랑스 교육 하면 떠오르는 바칼로레아는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대입 시험인데, 나폴레옹 때 만들어져서 2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본고사에서 학력고사를 거쳐 수능에 이르는 입시의 파노라마를 겪은 우리나라 중년 세대에겐 어안이 벙벙할 일이다.

프랑스 교육은 생각의 힘을 기르는 데 맞추어져 있다. 학생이 지망하는 전공에 따라 바칼로레아 문제 유형은 몇 가지로 나뉘는데, 수학과 철학 시험은 문·이과를 가리지 않고 모든 학생이 치러야 한다. 게다가 모든 문제는 서술형이다. 답이 아닐 것 같은 후보를 제거하면서 암기한 공식에 대입해서 빠르게 푸는 기술을 익힌 학생들에겐 기겁할 일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적어 내면 틀려도 부분점수를 받으니 익숙해지면 더 맘이 편하다.

가장 비중이 큰 철학 시험은 프랑스 특유의 것인데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같은 문제가 출제된다. 미리 정해둔 답이 있을 리 없다. 학생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도록 요구하고, 역사적 사실과 논증을 활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적어 나가는지를 평가한다.

‘실수해도 괜찮아’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문화는 덤이다. 우리는 어떤가? 객관식의 틀 속에서 한 문제 틀리면 등급이 송두리째 내려가니 ‘실수하면 죽음’이라는 생각이 당연시된다. 전형이 다양해져서 수능에 목매는 게 적어졌다고 하지만 학교생활 대부분은 일단 입시에서 잘하기 위한 공부에 집중한다. 모험이 뭐더라? 그건 대학에 가서나 생각해 보려고 옆으로 치워 놓는다.

물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프랑스는 매년 바칼로레아 관리를 위해 1조 원 이상을 쏟아 붓는다. 서술형 문제 채점의 공정성 시비에 대비해 방대한 채점위원단을 만들어 예상 유형별로 채점 기준을 정하는 일은 녹록지 않다. 찬반 논쟁이 있지만 대부분의 프랑스 국민은 이런 투자를 나라의 미래를 위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결과는 어떤가? 노벨상 순위에서 프랑스는 총 65명을 배출한 세계 4위 국가다. 특히 난제를 돌파하는 창의성과 논리적 사고가 중요한 수학 분야에서 다른 유럽 강국을 현격한 차이로 압도하는데,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순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파리에서 만난 2010년 필즈상 수상자인 세드리크 빌라니 교수는 프랑스 수학의 힘은 전적으로 교육 제도와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북유럽의 소국가 핀란드는 다른 극단을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며 분야 간의 벽을 허무는 융합 교육으로의 강력한 교육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노키아의 흥망을 경험해서일까? 변화해야 살아남는다고 믿는 게 분명하다.

현지에서는 ‘현상 기반 학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중학교 학생들에게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돼서 기름이 쏟아진 상황을 주고 각종 자료를 뒤지고 독서를 해서 해결책을 찾아가게 시킨다. 학생들은 유사한 사례를 찾으며 역사 공부를 하고, 기름 제거 방법과 약품을 찾으면서 화학을 공부하며, 각종 비율에 관계된 수학을 공부하고 생태계의 복원에 관한 생물학을 공부한다.

이 과정에서 실험과 토론을 하는데, 말만 바꾸면서 자기주장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깊이 있는 관련 분야 공부의 필요를 느끼게 해서 충분한 내용을 가진 전공과목에 진입하는 도구로 삼는다. 많은 학교에서는 기존 과목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현상 기반 학습’ 수업을 추가하여 시험 운영 중이다. 내년부터는 이런 수업의 도입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의무화된다.

세상은 급박하게 변하는데 교육 개혁을 얘기할 때마다 우리는 언제까지 교과과정의 양이 많고 적고를 논쟁하며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 할 건가? 자신이 배우는 것과 세상의 연계를 깨닫게 해서 아이들 스스로 학습의 이유를 찾아가게 하는 교육 개혁을 우리 상황에 맞추어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교육 개혁#바칼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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