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류, 닭을 사랑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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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로드/앤드루 롤러 지음·이종인 옮김/480쪽·1만9500원·책과함께
지구인이 가장 많이 먹는 새 ‘닭’… 17세기경 전 세계로 보급된 후
단백질 공급원·의약 재료로 쓰이며 인류에 없어선 안될 존재로 각광
처참한 환경에서 자라는 현대의 닭… 단순 식품으로 치부되는 건 아닌지

초현실주의를 추구하는 한국 작가 사타의 2010년 작품. 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닭은 번식력이 왕성하고, 키우기 쉬우며, 해충도 많이 잡아먹어 인류에게 사랑받는 가축이 됐다. 동아일보DB
초현실주의를 추구하는 한국 작가 사타의 2010년 작품. 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닭은 번식력이 왕성하고, 키우기 쉬우며, 해충도 많이 잡아먹어 인류에게 사랑받는 가축이 됐다. 동아일보DB
대한민국은 ‘치킨 공화국’이다. 야구 관람의 필수품으로, 야식의 제왕으로 자리 잡은 치킨만큼 대중적인 음식도 드물다.

다른 나라의 ‘꼬꼬댁’ 사랑도 마찬가지. 지구상에는 200억 마리가 넘는 닭이 사는데 닭이 없는 지역은 남극뿐이다. 남극 대륙을 관장하는 국제 조약이 펭귄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살아 있는 닭이나 익히지 않은 닭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책은 ‘지구의 단백질’로 자리 잡은 치킨의 역사를 담았다. 닭이 원산지인 남아시아의 밀림에서 세계로 보급된 과정과 닭에 얽힌 문명사를 소개한다.

고대 이집트에 닭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집트 무덤에서는 고양이부터 악어에 이르기까지 수십만 개의 동물 미라가 나오지만 닭 미라는 없다. 닭이 남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시기는 기원전 2500년경으로 추정한다. 중국에서 닭이 언급된 가장 오래된 문서 기록은 기원전 1400년 전의 것이다. 17세기경에는 세계로 닭이 보급됐다.

닭이 오리 같은 다른 조류에 비해 보편화된 이유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닭은 알을 많이 낳고, 빨리 자라며, 진드기나 모기 같은 해충도 많이 잡아먹는다. 새벽을 알리는 자명종 역할도 한다. 최근 일본 연구팀은 닭 울음소리가 인간보다 먼저 빛을 인식하는 민감한 수탉의 ‘24시간 체내 시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치킨의 대명사가 된 미국의 프라이드치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식민지 시대 초기 미국에서 닭은 보편적인 식재료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칠면조, 비둘기, 오리, 사슴, 양고기 등을 주로 먹었다. 하지만 노예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닭을 ‘복음의 새’로 부르며 즐겨 먹었다.

1824년 요리사인 메리 랜돌프는 요리책 ‘버지니아 주부’에 지금과 같은 프라이드치킨 조리법을 소개했다. 이 조리법은 훗날 프라이드치킨의 원형이 됐다. 미국 중서부 출신 백인인 할랜드 샌더스는 랜돌프의 요리법을 약간 변형하고 압력솥을 사용해 패스트푸드 체인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탄생시켰다.

닭은 치료제로도 각광을 받는다. 미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닭고기 수프는 콧구멍 속의 솜털을 강화시켜 해로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아준다. 닭고기는 황을 함유한 아미노산인 시스틴을 함유하고 있는데, 시스틴은 기관지염 치료에 효과가 있다.

독일 드레스덴의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는 매일 달걀 35만 개 이상이 배달된다. 작업자들은 쇠바늘에 바이러스를 묻혀 달걀에 찌른다. 바이러스는 72시간 동안 무균 환경에서 번식된 뒤 바이러스를 비활성으로 만드는 화학약품 처리를 거쳐 포장 용기에 담긴다. 독감 예방 백신은 이렇게 탄생한다.

저자는 “닭은 인류의 필수품이 됐지만 오늘날의 처지는 처참하다”고 말한다. 예전처럼 마당에서 뛰놀지 못하고 비좁은 닭장에서 항생제로 질병을 막으며 자란다. 살이 빠르게 오르도록 개발된 닭은 골격이 발육을 따라갈 수 없어 다리와 엉덩이에 골상이 생기고 사료 통까지 걸어가지도 못한다. 한 이스라엘 연구팀은 가공비용을 줄이기 위해 털 없는 닭을 개발했다.

책 뒷부분에 주석을 400여 개나 넣을 정도로 많은 문헌과 자료를 참고한 충실한 책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함께 읽을 책
식재료와 음식에 관한 책 중 햄버거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탐식의 시대’(레이철 로던·다른 세상)를 참고할 만하다. 이 책은 더 나은 음식을 먹기 위해 고안된 요리법들이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설탕과 권력’(시드니 민츠·지호)은 중세 귀족이 의약품으로 사용하던 설탕이 필수품이 된 역사를 좇는다. 한국과 일본의 라면회사 대표가 들려주는 라면의 유래는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무라야마 도시오·21세기북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음식의 별난 역사’(이안 크로프톤 지음·레몬컬쳐)에는 코끼리, 기린, 하마, 다람쥐뿐만 아니라 톱밥, 잔디, 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수의 진흙 등 기이한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법이 담겼다. 우리 근대사 100년 동안의 먹거리는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에 소개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치킨로드#닭#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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